2차대전 당시 일본군의 맹목적 충성심에 놀란 미국이 전후 그 원인을 분석해 봤다고 한다. 그랬더니 그 전율할 충성심이 유교정신에서 비롯됐고 그 뿌리가 한자에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에 따라 미국은 맥아더 사령부를 통해 일본 정부에 『한자를 폐기하고 일본의 교과서를 로마자화하라』고 종용했었다는 것. 이에 당시 일본 총리가 완곡히 거절, 미국의 압력을 피했다고 한다. 『민주주의란 국민의 뜻을 존중해야 하는데 일본 국민 가운데 한자를 없애자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고 대답해 그나마 한자의 맥을 이어갈 수 있었다.
사실 한자를 익히자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오죽하면 중국의 문호 노신(魯迅)이 『한자가 망하지 않으면 중국이 망할 것』이라고까지 말했겠는가. 하지만 수십년이 지난 지금 한자는 없어지지 않았고 중국도 망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한때 중국어의 로마자화와 함께 간화자(약자) 정책을 시행해온 중국 정부는 지난 86년 제2차 간화자 초안 중 1백11자의 사용을 중지시키고 더 이상 간화자를 만들지 못하게 했다. 이어 올해부터는 소학교에서 번체자(정자)를 교육하기로 했다. 한때 중국에서마저 홀대받던 한자가 이제 다시 본래의 자리를 찾은 셈이다.
현재 한자를 사용하는 인구는 중국 일본 한국 등 8개국 15억여명. 나라마다 읽는 음은 달라도 필담으로 어느 정도 뜻을 주고받을 수 있다. 더구나 요즘은 서구 열강들마저 한자문화권의 윤리와 덕목을 새롭게 인식해가고 있다.
그런데도 조상들이 수천년간 사용하면서 역사를 기록하고 문화를 꽃피워온 한자는 없애자고 하면서 초등학교 3학년부터 영어를 교육하겠다니 안타깝다. 가뜩이나 서구화해가는 국민을 아예 미국시민으로 기르겠다는 발상과 뭐가 다른가.
한글전용만이 애국인양 인식되던 시대가 있었다. 한때는 초등학교에서 비행기를 「날틀」, 학교를 「배움집」으로 가르치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날틀이나 배움집이라는 말을 누가 쓰는가. 언어란 그런 것이다.
우리글을 지키고 사랑한다 해서 반드시 한자를 없애야 하는건 아니다. 그동안 한글전용교육을 실시해왔는데도 우리말은 오히려 형편없이 망가져 버렸다. 국민의 언어생활을 이끌어갈 아나운서마저 우리말의 장단조차 구분하지 못할 정도다. 땅에 떨어진 국민의 도덕심 함양을 위해서도 한자교육은 필요하다.
박광민<어문교육연구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