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철새들이 돌아오게 하자

  • 입력 1997년 2월 16일 19시 53분


입춘이 지나자 남녘엔 벌써 버들개지 소식이 들린다. 따뜻한 겨울을 보내기 위해 한반도를 찾았던 청둥오리 두루미 고니 황새 독수리 등 겨울철새들도 새로운 보금자리와 먹이를 찾아 길떠날 채비에 한창이다. 철새들이 머나먼 길을 날아가려면 몸안에 지방을 비롯한 많은 에너지를 축적해야 한다. 그런데 새해 들어서만 철원평야에 이어 임진강변에서 천연기념물 제243호인 독수리 19마리가 독극물에 중독된 청둥오리를 먹고 또다시 떼죽음을 당했다. 독수리는 세계적으로 8백여마리밖에 남지않은 멸종위기의 희귀조로 국제적인 보호를 받고 있다. 수사당국의 조사가 진행중이니 진상은 곧 밝혀지겠지만 청둥오리 꿩 등을 잡기 위해 독극물이 든 모이를 뿌린 밀렵꾼들의 소행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독수리가 두번씩이나 맥없이 떼로 죽어가다니 안타깝고 답답하다. 그것도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될만한 비무장지대 민통선 안에까지 사악한 손길이 뻗쳤으니 서글픈 일이다. 우리 나라 최대의 철새도래지인 주남저수지도 갈대숲이 불에 타면서 생태계가 파괴됐다. 둥지를 잃은 철새들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우울한 소식마저 들린다. 새는 생태계 보전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구성인자중 하나다. 우리 나라 어디에서나 흔히 볼 있는 박새가 한해에 잡아먹는 곤충은 무려 8만5천여마리에 이른다. 뻐꾸기 한마리는 해충 9만여마리 이상을 잡아먹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처럼 새는 자연환경과 상호작용을 하면서 먹이사슬을 통해 자연생태계의 균형을 유지한다. 새는 인간에게 환경오염의 정도를 미리 알려주는 지표가 된다. 농약이나 오염물질에 특히 민감하기 때문에 새가 살지 못하는 곳에서는 사람도 살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그런 철새가 다시 찾아오지 않는다면 생태계의 먹이사슬이 파괴될 수밖에 없다. 결국 해충이 극성을 부려 흉작이 우려되는가 하면 해충방제를 위한 농약의 과다사용으로 토양과 하천의 오염을 불러오기도 한다. 철새의 멸종은 몇몇 생물학적 종의 멸종에 그치지 않고 생태계 전체를 파괴시킬 수도 있다. 우리 곁을 찾아온 철새가 해마다 제철이 되면 약속처럼 도래할 수 있도록 보금자리와 먹이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이야말로 우리와 우리 후손들이 안전하고 쾌적한 자연환경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길이다. 김용한 <산림청 자원조성국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