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홍 기자] 여야가 8일 합의한 노동법 재개정안이 시행되면 우리 노동계 판도와 노사간 역학관계에 큰 변화가 올 전망이다. 「집단적 노사관계법」이 어떻게 개정됐는지 쟁점별로 살펴본다.
▼ 복수노조 허용 ▼
지난해 12월 통과됐던 개정법에선 3년간 유예됐던 최상급단체 복수노조 설립이 즉시 허용된다. 이에 따라 우선 현재 대기업의 강성노조를 주축으로 9백여개 노조 49만여명이 가입해 있는 민주노총이 합법적인 노조상급단체로 인정된다. 민주노총이 합법화 됨으로써 80년대 이후 정부 및 한국노총과 팽팽한 대립관계를 유지해 왔던 재야노동운동세력중 일부 극좌이념세력을 제외한 대부분이 제도권내로 진출하게 된다.
한국노총은 지난 50년간 유지해온 유일한 상급단체로서의 기득권을 잃게 됐다. 민주노총의 합법화로 앞으로 노사협상에서 한국노총과의 선명성 경쟁이 벌어질 것이란 우려도 없지 않다. 우선 당장은 현재 노조활동이 거의 없는 삼성그룹 포철계열사들을 대상으로 한 양대 노동기구의 세력확장 경쟁도 치열하게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장기적으론 강경 노동운동권의 제도권 흡수로 노사관계가 더 안정될 것이란 기대도 적지 않다.
또 직종별 상급단체도 복수노조가 허용되므로 기존의 금융노련 금속노련 언론노련 등 직종별로도 제2, 제3의 상급단체가 생길 것으로 보인다.
2002년부터는 단위사업장에도 여러개의 노조가 생길 수 있다. 선진국은 대만과 싱가포르를 제외하곤 복수노조가 원칙적으로 허용된다. 영국의 경우 79년엔 사업장당 평균 4.6개의 복수노조가 있었으나 92년엔 평균 2.5개로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이번에 삭제된 복수노조 금지조항은 5.16쿠데타 후인 지난 63년 만들어졌다.
▼ 노조전임자 임금 ▼
날치기 처리됐던 개정법과 마찬가지로 2002년부터는 사용자에 의한 노조전임자 임금 지급이 금지된다. 각 노조들은 조합원 회비만으로 노조전임자 임금을 충당해야하므로 작은 사업장에선 복수노조 설립은 커녕 기존의 노조마저 무력화되는 곳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여야는 선언적으로 「노사정이 조세감면 등을 통해 노조자립기금 마련을 위해 노력한다」는 데 합의, 실현과정에서 어려움이 예상된다.
노동전문가들은 궁극적으론 현재의 기업별 노조체제가 산업별 직종별 노조 형태로 바뀔 것으로 보고 있다. 선진국의 경우도 노조전임자 임금을 사용자가 주지 않는 곳이 많다. 하지만 법에 임금지급을 금지하는 명시규정을 둔 나라는 그다지 많지 않다.
▼ 무노동 무임금 ▼
파업기간중 임금지급을 아예 금지시켰던 날치기 법에 비해 「사용자는 쟁의기간중 임금을 지급할 의무를 지니지 않으며 노조가 파업기간중 임금 지급을 요구하는 쟁의를 벌일 경우 처벌키로」 함에 따라 다소 무노동무임금 원칙이 약화됐다. 사용자가 노조와의 원만한 관계를 위해 파업기간중의 임금을 줄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 제삼자 개입 금지 ▼
날치기 법과 마찬가지로 노동법상 제삼자개입금지조항이 삭제된다. 그러나 현행 규정 삭제 대신 노사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자의 범위가 「노사 상급단체, 노사요청으로 노동부에 신고된 자」 등으로 한정되고 「법적 권한 없는 자가 개입하는 것은 금지한다」는 조항이 신설됐다. 그동안 제삼자개입금지조항에 주로 걸려왔던 재야노동세력이 복수노조 허용으로 합법적인 노조상급단체가 될 수 있으므로 현실적으로 제삼자개입금지 조항에 걸려 옥고를 치르는 경우는 거의 없을 전망이다.
▼ 파업중 대체근로 ▼
날치기 개정법은 노조의 쟁의행위기간중 사용자가 「해당사업(법인)내의 다른 근로자를 작업에 투입, 조업을 계속할 수 있으며 신규하도급도 허용」했으나 여야는 이번에 신규하도급은 금지시키기로 했다. 구법(舊法)은 「쟁의에 관계 없는 자의 채용 또는 대체를 금지」하고 있으나 노동부는 지침을 통해 「해당 사업장내」 근로자에 한해 대체근로를 인정해 왔다.
▼ 기타 ▼
직권중재 대상 필수공익사업의 범위에서 은행(한국은행 제외)과 시내버스 등 운송사업은 2001년부터 제외된다. 기존의 병원 철도 방송 등은 계속 직권중재 대상 사업에 포함돼 쟁의행위가 제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