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안피가로/대기업 패션산업 투자 급하다

  • 입력 1997년 3월 21일 08시 14분


우리는 지구 어디에서라도 시공간을 초월해 경계없는 만남을 자유롭게 가질 수 있는 위성통신 시대에 살고 있다. 세계는 바야흐로 거대한 하나의 문화권으로 다가오고 있다. 세상은 디지털 혁명의 시대로, 정보와 문화의 전쟁시대로 바뀌어가고 있다. 특히 영상과 음악 및 디자인의 영향력은 놀라우리만큼 세상을 지배해가는 추세다. 디자인만 해도 건축 자동차 섬유 의복 구두 액세서리 헤어 메이크업 향수 등 실로 광범위한 분야에 미친다. 이 가운데 가장 빠르고도 직접적이며 강하게 유행을 주도해가는 분야가 바로 패션이다. 문화시대를 대비하는 긴 안목으로 본다면 전자공장 하나를 세우기보다 세계적으로 통하는 유명 디자이너 하나를 배출하기 위한 투자가 훨씬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단순히 패션상품 하나를 위해서가 아니다. 디자인과 문화의 힘이란 한 국가의 수출상품 전체의 이미지, 나아가 국가 자체의 이미지를 만들어주는데까지 이르렀으니 말이다. 섬유패션 산업에 관련된 인구는 6백여만명으로 전체인구의 15%에 이르러 농민 숫자와도 맞먹을 정도의 비중이다. 그런데도 수입 패션상품에 맥을 못추고 있는게 우리의 실정이다. 세계를 주도하기는커녕 쫓아가기에도 급급한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물론 해외 패션상품이 우리 생활의 질을 높여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문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 상품이 경쟁력을 잃고 결국 문화종속국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데 있다. 세계일류로 발돋움하는데 문화와 디자인의 힘만큼 절실한 것은 없다. 섬유산업은 과거에도 현재도 적자를 모르는 우리의 효자 산업이다. 섬유패션산업은 사치산업이 아닌 고부가가치 첨단산업으로 자원없는 우리로서는 21세기를 이끌어가야 할 미래의 산업인 셈이다. 문제는 재능과 창의력을 지닌 진정한 크리에이터의 발굴과 육성에 있다. 먼저 대기업을 통해 보다 긴 안목의 현명한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눈앞의 이익에 급급해 외제의류 수입에 열을 올릴 일이 아니다. 참다운 크리에이터의 육성은 세계 문화전쟁을 승리로 이끌어갈 전사들을 키워내는 일이다. 실력있고 창의성 있는 진정한 전사들이라면 극소수의 힘으로도 세계를 정복할 수 있다. 마침 서울국제패션박람회(SIFF)가 24일부터 26일까지 여의도에서 열린다. 국내외의 유수 디자이너들이 패션쇼를 개최하고 세계의 바이어들이 찾아오는 만큼 국민적 관심과 미래를 내다보는 대기업의 혜안이 요구된다 하겠다. 안피가로 <패션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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