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이슈/치매]국내 실태와 대책 문제점

  • 입력 1997년 3월 29일 08시 28분


[공종식·부형권기자] 지난 94년부터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돌보고 있는 강모씨(33·서울 은평구 신사동)는 최근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이유는 시어머니를 돌보면서 받은 스트레스가 감당할 수 없을 지경에 달했기 때문.기억장애로 치매가 시작된 시어머니의 병세는 지난해부터 급속히 나빠져 강씨를 이유없이 의심하기 시작했다. 『나를 죽이려고 밥에 독을 넣었다』고 생떼를 쓰는 것은 약과였다. 치매 때문에 밤낮이 뒤바뀐 시어머니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면서 며느리 강씨를 「고문했고」 틈만 나면 마구 때렸다. ▼ 天刑아닌 신경과 질환 ▼ 강씨는 이후 환청(幻聽)에 시달려 병원을 찾았다가 정신분열증 진단을 받았다. 「노망」 「죽음을 앞둔 노인의 어리광」 정도로 여겨졌던 치매가 급증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현재 국내 치매환자수는 60세 노인인구의 3.4%인 14만여명. 2010년에는 26만명, 2020년에는 39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러나 치매에 대한 우리 사회의 대책과 준비는 아직도 걸음마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선 치매에 대한 가장 큰 문제는 치매를 「신경과 질환」이 아닌 「천형(天刑)」으로 보는 일반인들의 시각이다. 현재 치매가족회를 이끌고 있는 李聖姬(이성희·46·여)회장은 『「환자에게는 천국, 간병하는 가족에게는 지옥」이라는 말처럼 치매는 가족에게 고통스럽기 그지없는 질병』이라면서 『그런데도 대부분이 병을 숨기고 있어 치매문제가 쉽게 공론화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청주에 살고 있는 정모씨(71·여)는 3년전부터 대소변을 못가리고 기억력이 떨어지는 등 치매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가족은 남들에게 알려질까 두려워 쉬쉬하기만 했다. 그러나 지난해 8월 정씨가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는 바람에 병원에 입원했다가 치매사실이 확인됐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정씨는 이미 가족도 전혀 알아보지 못하고 밤마다 헛소리를 할 정도로 치매가 악화했고 이제는 마지막 날만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치매에 대한 사회적인 대책 또한 이처럼 원시적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치매는 하루 24시간 보호가 필요하고 중증에 이를 경우 가정에서 돌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어느 질병보다 사회적 도움이 절실하다. 그러나 생활보호대상자나 무의탁노인이 아닌 일반인들을 위한 치매시설은 전무한 것이 현실이다. 또 몇군데 치매전문병원이 있기는 하지만 특별한 의료보험혜택이 없어 입원비만도 월 1백50만원이 넘게 필요하다. 또 일반인을 대상으로 낮동안 치매노인을 돌봐주는 시설을 갖춘 노인복지관도 서울의 경우 북부 송파 등 손으로 꼽을 정도고 수용인원도 모두 합쳐봐야 50명 미만이다. 이에 따라 오히려 극빈층보다는 중산층이, 내팽개치기보다는 어떻게든 끝까지 부모를 추하지 않게 모시려는 「효자」들이 더욱 고통받고 힘든 경우가 많다. 5년째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고모씨(45·서울 양천구 목동)가 대표적인 경우. 고씨의 어머니는 2년전부터 상태가 심해지자 거울에 비친 자기모습을 보고 싸우거나 밤에 헛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고씨는 어머니가 아내를 구타하기까지 하는 바람에 더이상 집에서 모시기 힘들어 대학병원에 입원시켰다. ▼ 병원비만 月 3百萬원 ▼ 그러나 간병인료를 포함, 한달평균 3백만원이 넘게 나오는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어 결국 다섯달만에 집에 다시 모셔와 따로 사람을 구해 돌보도록 했다. 그러나 매달 1백만원 이상을 줬지만 간병인들이 대부분 석달을 넘기지 못하고 힘들다면서 그만뒀다. 결국 시어머니 간병을 고스란히 떠맡게 된 고씨의 부인과 고씨 사이의 갈등은 깊어만 갔고 지난해에는 결국 합의이혼에 이르렀다. 미국의 치매노인시설에서 일한 경력이 있는 삼성생명 실버타운운영팀의 金楠恩(김남은·30)씨는 『미국의 경우 도시마다 치매상담소 병원 치매노인요양시설이 체계적으로 연계돼 있어 환자가족들이 재택간호서비스 단기보호 장기요양 등 여러가지 치매서비스중에서 알맞은 형태를 선택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김씨는 『한국은 개인이 모든 부담을 떠맡고 있어 안타까울 때가 많다』고 말했다. 서울대 의대 정신과학교실의 禹鍾仁(우종인)교수는 『국내 치매시설의 경우 진단기준 서비스기준 등 아무것도 제대로 마련된 것이 없어 대부분이 수용소 수준』이라며 『중산층이 이용할 수 있는 민간유료시설이 많이 늘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 미혼간호사 간병 회피 ▼ 이밖에 가장 간호가 힘든 환자로 꼽히는 치매환자를 간병할 수 있는 전문인력확보도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현재 국내에서 치매환자가 입원할 수 있는 몇 안되는 병원중 하나인 가락신경정신과의원의 경우 지난 94년 개원 당시 채용한 미혼간호사들이 『일이 힘들고 더럽고 어렵다』며 대부분 그만둘 정도로 치매환자 간호는 어려운 것이 사실. 일찍부터 노인복지에 대한 관심이 많은 일본에는 치매노인을 전문적으로 간호하는 치매조호사를 양성하는 전문학교만도 1백50개에 이르고 여기에서 배출된 인력도 2만명이 넘고 있다. 한편 치매를 아직도 「자연스런 노화의 한 과정」으로 여기며 병으로 인식하지 않는 일반인들의 몰이해도 치매문제 해결에 어려움을 안겨주고 있다. 중앙부처 고위직 공무원으로 있다가 퇴직한 박모씨(60)는 2년전 몸을 가누기가 힘들어지고 길을 잃는 일이 잦아 병원을 찾았다가 혈관성 치매판정을 받았다. 치매에 걸린 이유는 평소 양약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고혈압치료를 소홀히 했기 때문. 진단결과 치매가 이미 7년전부터 진행돼 돌이킬 수 없다는 판정이 나왔다. 삼성의료원 기억장애클리닉의 羅悳烈(나덕렬)박사는 『우리나라 치매환자중에는 조기에 발견만 하면 치료가 가능한 혈관성 치매환자 비율이 외국에 비해 상당히 높은 편이어서 안타까울 때가 많다』면서 『고혈압이나 당뇨병을 앓고 있는 환자로서 기억력이 떨어지면 반드시 병원에 와서 진찰을 받아봐야 한다』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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