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이슈/치매]60대 목사의 고통받는 실례

  • 입력 1997년 3월 29일 08시 28분


[이병기 기자] 신학대학 졸업후 30여년간 하나님만을 섬겨온 박영진 목사(가명·65·전남 목포시). 박목사는 지난해 12월 치매환자 요양원에 입원했다. 알츠하이머병 증상이 중증으로 발전한 박목사는 이미 많은 기억을 잃어버려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가끔 유창한 영어발음으로 영어성경을 읽어 내려가 가족들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한다. 때론 밑도 끝도 없이 『현대인이 너무 방황하고 있다』며 간병인을 상대로 설교를 하기도 한다. 과거의 오래된 습관이 남아있는 것. 그에게 하루중에서 가장 힘든 일은 화장실 사용. ▼ 방금 식사하고 “밥달라” ▼ 우선 병실을 나와 화장실을 찾아야 하는데 이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화장실의 위치를 항상 잊어버리기 때문. 불편한 몸을 이끌고 「미로같은 병동」에서 화장실을 찾다 지쳐 복도에서 생리현상을 해결해버린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가까스로 화장실을 찾아가도 넘어야할 산은 여전히 많다. 우선 목욕을 위해서는 수도꼭지를 돌려야 하는데 박목사에게 수도꼭지는 마치 원시인이 처음 보는 이상한 기계장치와 같다. 수도꼭지를 돌리더라도 물의 온도를 조절하지 못해 뜨거운 물에 데기 일쑤다. 옷을 입는 일도 어렵다. 60여년간 아침 저녁으로 단추를 잠가온 그의 손이 단추 잠그는 법을 망각해 버렸다. 치매환자를 위해 만들어진 환자복도 단추대신 달려있는 띠를 매듭지을 수 없어 어렵기는 마찬가지. 박목사는 자신의 눈에 익은 옷만 입으려고 해 간병인들을 당황하게 만들기도 한다. 입고 있는 옷이 더러워 벗기고 새 옷을 주면 『내 옷이 아니다』고 옷을 입는 것을 거부한다. 발병전 깔끔하고 완고한 그의 성격이 남아 있는 것. 그는 자꾸 식사를 한 사실 자체를 잊어버려 간병인을 난처하게 한다. 5분전에 식사를 해놓고도 자꾸 밥을 달라고 요구하고 밥을 주지않으면 『나를 굶겨 죽이려고 한다』며 화를 낸다. 치매환자를 처음 대하는 간병인일수록 당황하게 되는데 이때는 간호사가 와서 박목사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려 놓는다. 그러면 언제 그랬느냐는듯 조금전 일을 까맣게 잊어버린다. 사실 요양원에 들어오기 전에는 박목사의 요구에 따라 가족들이 어쩔 수 없이 자꾸 음식을 주는 바람에 당뇨병까지 얻어 고생을 하고 있다. 그는 음식을 삼키는데도 문제가 있지만 식사전에는 어김없이 기도를 한다. 박목사는 외아들 승현씨(가명·33)부부가 면회를 왔다가 떠나면 곧 잊어버리고 『아들이 오지 않는다』 『아들이 나를 버렸다』고 울곤한다. 그는 면회온 승현씨에게 치매환자 특유의 「의심증」이 발동, 『간병인이 밥을 주지 않는다』 『간병인이 내 돈을 훔쳐간다』며 없는 일을 일러 바치기도 한다. 박목사는 최근 면회온 승현씨에게 자꾸 『집으로 돌아가자』고 졸라 승현씨의 가슴을 쓰리게 했지만 며칠전에는 감동적인 순간도 선사했다. 박목사가 2년만에 찾아온 부인(63)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린 것. 사실 박목사는 치매 발병후 부인을 때리는 몹쓸 버릇이 생겨 서로 각방을 쓰면서 남남처럼 살아왔다. 교회신도들 사이에서도 원앙부부로 부러움을 샀던 40여년의 금실이 치매때문에 깨진 것. 승현씨와 부인에게는 박목사의 눈물이 비록 의식은 없지만 용서를 비는 참회의 눈물로 비쳤다. ▼ 30년 개척한 교회 은퇴 ▼ 치매가 끔찍한 병인 이유는 치매환자가 수십년간 쌓아온 인간적인 유대를 파괴시켜버리기 때문. 박목사가 치매증상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지난 88년2월초. 기억력에 조금씩 문제가 생기더니 30여년간 매주 교회를 드나든 장로의 이름을 자꾸 잊어버리고 설교원고를 어디에 놔뒀는지 기억할 수 없는 경우가 빈발했다. 『나이가 들면서 건망증이 심해져간다』고만 느낀 박목사는 대비책으로 메모를 하기 시작했다. 새로 들어온 신도 이름, 교회자금을 어느 은행에 얼마를 입금했는지 비망록에 적으면서 희미해져가는 기억력을 보충했다. 그러나 이같은 노력도 90년에 접어들면서 별 소용이 없었다. 설교도중 성경의 인용부분이 틀리거나 두서없는 설교를 자주 하면서 『박목사가 이상해졌다』는 소문이 신도들사이에 자연히 퍼져 나갔다. 결정적인 것은 박목사의 「도난망상」이었다. 박목사가 하루가 멀다하고 신도와 가족들에게 『장로들이 교회 돈을 빼내간다』 『아무개가 내 통장을 가져갔다』고 근거없는 말을 하는 상황에 이른 것. 모두들 박목사를 기피하기 시작했다. 결국 박목사는 자신이 개척해 30여년간 담임한 교회에서 은퇴당했다. 91년 여름이었다. 은퇴후 박목사의 증세는 심해져 갔다. 특히 박목사는 사소한 일을 트집잡아 부인을 구타하고 부인과 아들에게 『모자가 짜고 내 돈을 빼앗으려 한다』는 등 과거의 박목사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상스러운 행동을 했다. 남을 의심하는 버릇이 더욱 심해지면서 은퇴후 집에 찾아오는 신도들에게 『내 돈을 빼앗으려 한다』고 대들어 신도들의 발길마저 뚝 끊어졌다. 92년 여름. 영국 런던에서 동료목사로부터 『한인교회에서 함께 일하자』는 편지가 왔다. 박목사는 오랜만에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한달후 박목사는 침울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왜 일찍 돌아왔느냐』는 가족의 질문에 박목사는 묵묵부답이었다. 일주일후 한인교회 목사로부터 사정을 짐작케하는 편지가 왔다. 「박목사가 신도들과 많은 마찰을 빚고 남을 병적으로 의심해 도저히 함께 있을 수 없다」는 내용. 편지에는 마지막으로 「박목사가 치매인 것 같다」며 병원에 가볼 것을 권유하는 내용도 있었다. 결국 승현씨는 박목사에게 『아버님이 치매인 것 같으니 병원에 가자』고 말씀드렸다. 그러나 박목사는 『자식이 아버지를 정신병원에 집어넣으려 한다』며 불같이 화를 낼 뿐이었다. ▼ 가족들 고통 “상상초월” ▼ 박목사의 「행패」가 더욱 심해져 결국 부인이 집을 나갔다. 이후 4년간 아버지를 보살피는 승현씨의 고생은 치매환자를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다. 지난해 5월. 승현씨는 TV를 시청하다 「치매가족협회」라는 단체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당장 전화를 해서 만나보니 자신과 같은 처지가 한두사람이 아니었다. 협회의 추천으로 박목사를 병원에 데려가 치료를 받았더니 「도둑망상」과 난폭함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거의 없어졌다. 『진작 병원에 모시고 갔으면 어머니가 집을 나가실 필요가 없었을텐데…』하는 회한이 밀려왔다. 지난 1월 결혼한 승현씨는 곧 아버님을 집으로 모셔오기로 부인과 합의했다. 승현씨는 앞으로 어떤 상황이 전개될지 불안하다. 마음이 넉넉한 부인이지만 치매환자를 보살피는 것은 또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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