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의 날을 맞이하며]이현락/正論을 다시 생각한다

  • 입력 1997년 4월 6일 19시 56분


오늘은 제41회 「신문의 날」. 지난 57년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신문인 독립신문 창간 기념일을 「신문의 날」로 정하고 해마다 신문의 역할과 사명을 되새겨온지 41년째. 그동안 우리나라 신문은 많은 성장을 해왔으나 전반적으로 언론이 추구해야 할 본질적 역할과 시대적 사명을 수행하는데 얼마나 충실했는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통치권력의 타락으로 나라가 온통 흔들리는 사회적 위기와 치열한 외형경쟁 속에 선정주의 보도가 판을 치는 이즈음의 언론상황은 언론인 모두에게 겸허한 반성을 요구한다. 문민정부가 들어선 후 언론은 「문민」과 「개혁」이란 두 단어에 홀렸던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 민주정부의 탄생과 권위주의 체제의 혁파를 열망했던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권력과 언론 사이의 본질인 갈등관계를 소홀히 인식했던 것 같고 그것이 한보사태에까지 이른 통치 권력의 타락부패를 막지 못한 원인의 하나라고 보여진다. 전통적으로 우리나라 신문의 언론사적 주류(主流)는 그 사회적 역할에 기초하여 형성되고 또 평가받아 왔다고 본다. 1896년 창간하여 4년미만의 단명으로 끝난 독립신문은 서구문화 지향적이었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순한글구어체 기사에, 제작의 중심축을 민(民)에 두었다는 점에서 신문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정통言論의 전통 ▼ 일제하 3.1운동 이듬해 민족지로 창간한 동아일보는 창간사를 통해 자유 민주 평화 해방 인도주의 문화 예술 등 미래지향적 비전을 제시하면서 「민중의 친구」로서 「생사진퇴」를 함께하겠다고 선언, 정론지로서의 역할을 다짐했다. 이것은 정통언론의 전통으로 굳어졌다. 그러나 신문의 대중화가 급진전되면서 정론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퇴색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갖게 된다. 권위주의 정권이 물러간 이후 신문환경은 급격히 변하고 있다. 정치적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국민의 관심은 경제 문화 생활 등으로 다양화되고 독자들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는 가운데 가치의 다원화, 이해(利害)의 분화현상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전문화 정보화 국제화의 물결은 이러한 변화를 더욱 촉진하고 있다. 언론은 이제 독자들의 새롭고 다양한 욕구를 충족해야 하는 새로운 과제를 요구받고 있다. 다양한 정보와 심층보도, 깊이 있는 분석으로 독자들의 판단을 돕고 생활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하는 지면을 꾸며야 하는 것이다. ▼ 21세기 언론과 魂 ▼ 그러나 이같은 변화속에 언론의 본질이 훼손되는 것은 아닌지 염려된다. 그렇지 않아도 날로 치열해지고 있는 신문간의 과당경쟁, 가십성 읽을 거리, 단편적 특종경쟁, 폭로 추측보도 등 감각에 호소하는 선정주의 보도가 난무하는 것이 현실이다. 정론은 마치 모든 언론의 당위인 것처럼 호도되어 독자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시대 감각에 맞춰 지면변화를 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윤리와 책임이라는 언론의 기본 원칙이 실종되고 독자들의 건전한 판단을 흐리게 하여 신뢰성과 정론에서 신문의 차별성이 매몰되는 안타까운 현상이 확산돼서는 안된다. 정보화 물결이 전세계를 휩쓸고 국가간 지역간 시간차와 공간차가 소멸된 지구촌 동시화 시대에 우리는 들어서 있다. 세계는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되어 국가경쟁력이 새로운 이데올로기로 등장한 가운데 다가오는 21세기에는 정보가 경쟁의 승패를 좌우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새 세기를 앞두고 국민들이 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미래를 바르게 열어 가는 것이 정통 언론의 시대적 과제일 것이다. 그러나 여하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정통언론이 지켜야 할 궁극적 가치는 신문의 「혼」이다. 나라와 민족을 지키고 민(民)의 편에서 권력을 감시하여 정의로운 사회를 일구는 것이 신문존재의 본질적 이유이기 때문이다. 이현락 <동아일보이사·신문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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