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수씨 대답은 사실상 시인』…논리학자들 분석

  • 입력 1997년 4월 8일 20시 08분


―의원에게 돈을 준 사실이 있나. 『기억에 없다』

―「기억에 없다」는 것과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 차이가 있는가.『예』

7일 한보청문회에서 신한국당 孟亨奎(맹형규)의원과 鄭泰守(정태수)한보총회장 간의 문답이다.

논리학전문가들은 여기서 정씨가 「기억에 없다」와 「사실과 다르다」의 의미에 차이가 있다고 시인한 것은 사실상 질문내용을 인정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해석했다.

서울대 언어학과 李廷玟(이정민)교수는 『기대한 대답을 완곡하게 이끌어 내려는 의도를 담은 질문에 「예」라는 단순명쾌한 대답이 어우러져 사실에 대한 진술을 만들어 냈다』고 말했다.

특위위원이 『개인적으로 정치자금을 주었는가』라고 물은데 대해정씨가 『내가 안했다』고대답한 것도 또 하나의 비슷한 사례.

이번 청문회에서 정씨가 가장 많이 사용한 『모른다』와 『기억에 없다』에 대해서울대 철학과 黃暻植(황경식)교수는 『이는「대답에 필요한 사전지식이 없다」는 뜻으로 사실을 인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는 말』이라고 해석했다.

황교수는 『충분한 자료를 근거로 효과적으로 질문하거나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야만 그나마 사실에 대한 진술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8일 속개된 청문회에서 한 의원이 孫洪鈞(손홍균)전서울은행장에게 『정태수 같은 사람한테 돈을 빌려준 것을 보면 당신이 뇌물을 받았음에 틀림없다』고 한 것은 「순환논법의 오류」와 「인신공격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민이 지켜보고 있으니 진실을 말하라』 『역사는 속일 수 없으니 여기서 다 털어놓으라』는 등의 말은 아무런 논리적 효과가 없는 「협박」에 불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

<이철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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