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법상 금융계와 관계(官界)인사들은 정총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날 경우 곧바로 알선수재죄나 수뢰죄가 적용될 수 있지만 정치인은 다르다.
정치인은 기업인으로부터 아무리 많은 돈을 받았을지라도 단순히 정치자금조로 받았으면 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이들을 처벌하기 위해서는 돈을 받고 은행에 대출을 청탁하거나 한보철강의 각종 인허가에 개입한 사실이 입증돼야 한다.
돈을 받고 대출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확인되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죄가 적용돼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그러나 정치인에게 알선수재죄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우선 촌지나 인사정도의 수준이 아니라 특혜대출을 청탁할 만한 거액이 오간사실을 확인한 뒤 뇌물을 준 시점과 특혜대출시점을 일치시키고 청탁사실을 밝혀내야 하는 등 돈과 특혜대출과의 직접적인 연관성을 찾아내야 한다.
그러나 이번에 리스트에 올라 있는 대부분의 정치인은 한보로부터 명절이나 선거 때 인사명목이나 선거자금조로 돈을 건네받은 것으로 알려져 정치인들의 형사처벌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번에 소환조사키로 한 33명의 정치인 가운데 국회 재정경제위나 통상산업위에 속해 있는 의원과 각 당의 중진급 실세의원 등 10여명은 일반 의원들보다 상대적으로 형사처벌될 가능성이 높다.
재경위와 통산위 소속의원들은 직무상 한보철강의 대출이나 인허가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만큼 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날 경우 어느 정도 연관성만 인정돼도 수뢰죄가 적용될 수 있다.
또 신한국당 대선예비후보의 한명인 金德龍(김덕룡)의원과 국민회의 당지도위의장 金相賢(김상현)의원, 자민련 사무총장 金龍煥(김용환)의원 등 3명은 소속 정당 의원들에게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수뢰죄 적용이 가능할 수도 있다.
이와 함께 한보가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을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이나 재정경제원장관 등을 지낸 인사가 돈을 받았다면 부정처사후 수뢰죄가 적용될 수 있다.
이 경우 수뢰액수가 1천만원 미만이면 형법상 단순수뢰죄가 적용되지만 1천만원 이상이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수뢰죄가 적용된다. 다만 이 때 5천만원 미만이면 5년 이상의 징역에, 5천만원 이상이면 10년 이상의 유기징역이나 무기징역의 형을 받게 된다.
검찰주변에서는 적어도 억대 이상의 돈을 받은 재경위나 통산위 소속의원, 경제부처 출신의원 또는 중진급 의원중 3,4명은 형사처벌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하종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