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이 내 돈을 받아 선거에 쓰면 선거자금(정치자금)이고 자기 호주머니에 넣으면 뇌물이다』
한보그룹 총회장 鄭泰守(정태수)피고인이 14일 한보사건 3차 공판에서 털어놓은 「뇌물론」이다.
정피고인은 權魯甲(권노갑)피고인에게 준 돈과 관련, 『정치인에게 돈을 줄 때는 의례적으로 「잘 부탁한다」는 말을 건넨다』며 『권의원에게 다섯번 돈을 전달했지만 「현안」이 있었던 것은 95년과 96년 단 두번뿐』이라고 말했다.
부탁할 사안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뇌물과 일종의 「보험금」성격의 정치자금을 구별하고 있음을 실토한 셈이다.
이어 정피고인은 『야당에 주면 뇌물이고 여당에 주면 정치자금이냐』는 변호인의 질문에 옆자리의 鄭在哲(정재철)피고인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여기 여당도 있지 않나』라고 말해 방청석에서 폭소가 터져나왔다.
한편 權魯甲(권노갑)피고인측 변호인들은 이날 정피고인에 대한 보충신문을 통해 초미의 관심사인 「정태수 리스트」와 베일에 가려진 정피고인의 「뇌물행각」을 집요하게 추궁했다.
千正培(천정배)변호인은 『피고인은 지금까지 수십명의 정치인들에게 돈을 주었다는데 도대체 어떤 경우에 직접 돈을 주고 어떤 경우에 다른 사람을 통해 주었느냐』는 묘한 질문을 정피고인에게 던졌다. 정피고인은 별생각 없이 『잘 알면 직접주고 모르면 다른 사람을 통하고…. 뭐 본인이 만나기를 꺼리면 다른 사람을 통해 준다』고 대답했다.
이에 천변호인은 『지금까지 정치인에게 5천만원 이상의 돈을 준 적은 몇번인가』라는 질문으로 「정태수 리스트」의 규모를 파고 들었다.
『세봐야 알지, 내가 어떻게 그걸 다 기억하나…가만있자…』
그러나 순간 정피고인의 변호인인 徐廷友(서정우)변호사가 『변호인은 지금 재판과 관계없는 질문을 하고 있다』며 제지했다. 정피고인은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듯 『진술을 거부한다. 공소장이나 실컷 보면 알 것』이라고 정색을 하며 말문을 닫아버렸다. 추가 질문에 대한 정피고인의 답변은 『진술을 거부한다』로 일관됐다.
〈신석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