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수뇌「한보축소메모」파문]재수사때부터「예견된 갈등」

  • 입력 1997년 4월 19일 08시 03분


한보철강에 무리한 대출을 해준 일부 은행장과 은행장에게 대출압력을 행사한 전 청와대경제수석에게 업무상배임혐의를 적용, 처벌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일어난 검찰수뇌부와 수사팀간의 갈등은 갑자기 불거진 일이 아니다. 한보사건 재수사를 시작할 때부터 예견돼 왔다는게 검찰 안팎의 시각이다. 검찰은 한보사건 1차 수사에 대해 국민들의 비난이 쏟아지자 마지못해 지난 3월24일 수사사령탑인 대검중수부장을 전격 교체한 뒤 재수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한보사건을 보는 검찰수뇌부의 태도가 근본적으로 바뀐 것은 아니었다. 수뇌부는 재수사 착수 뒤에도 △「정태수리스트」수사불가 △은행장 및 청와대경제수석은 뇌물혐의로 처벌하되 업무상 배임혐의로는 처벌불가 등 1차 수사 때의 입장을 고수했다. 다만 金賢哲(김현철)씨 비리의혹사건에 대해서는 1차 수사 때보다 강도 높게 진행됐다. 그러나 새로 구성된 재수사팀의 생각은 검찰수뇌부의 의견과 근본적으로 달랐다. 재수사팀은 검찰이 국민의 신뢰를 받기 위해 비리전모를 밝히고 관련자 전원을 형사처벌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재수사팀은 우선 1차 수사에서 무혐의처리된 은행장들을 업무상 배임혐의로 처벌하고 대출압력을 가한 전 청와대경제수석도 업무상 배임혐의 공범으로 처벌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그러나 검찰수뇌부는 은행장들을 업무상 배임혐의로 처벌할 경우 경제가 위축될 수 있다며 뇌물비리가 드러나지 않는한 처벌할 수 없다는 입장을 재수사팀에 전달했다. 검찰이 지난 2주동안 은행장들의 업무상 배임혐의에 대한 집중수사 끝에 金時衡(김시형)전 산업은행총재 등 일부 은행장의 업무상 배임혐의를 확인하고서도 아직까지 형사처벌여부를 결정하지 못한 것도 이같은 갈등 때문이다. 또 「정태수리스트」에 올라있는 정치인의 처벌에 대해서도 검찰수뇌부는 단순한 정치자금을 받은 것에 불과해 처벌할 수 없다는 입장인 반면 재수사팀은 대가관계가 뚜렷한 정치인들을 엄격히 처벌해야 한다고 맞섰다. 따라서 검찰수뇌부의 이같은 「축소지향적」인 태도를 돌파하지 않으면 재수사팀의 장래가 매우 불투명하다는게 검찰 주변의 지적이다. 〈이호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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