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18일을 법정기념일로 제정키로 한 것은 지난 17일의 12.12 및 5.18사건 관련자에 대한 대법원의 유죄확정판결에 이어 광주민주화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정부차원에서 선언적으로 규정하는 의미가 있다.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국민과 피해자들이 그동안 요구해온 것은 △관련자 처벌 △피해보상 △명예회복 등 크게 세가지다.
이중 피해보상 문제는 지난 88년 대통령자문기구인 민주화합실천위원회(민화위)가 「광주문제 치유를 위한 대정부 건의안」을 마련하면서 논의된 뒤 어느 정도 일단락됐다.
5.18을 민주화운동으로 규정한 대통령 특별담화(88.11.26)와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보상 등에 관한 법률 제정(90.7.14)으로 피해자와 가족 3천4백20명이 1천8백18억원의 보상금을 받았다.
그러나 광주시민을 폭도로 몰아 많은 인명피해를 낸 당사자들에 대한 형사처벌은 그동안 이루어지지 않아 「80년의 상처」를 씻기에는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 부분은 최근 대법원의 확정판결로 마무리됐다.
5.18에 대한 평가를 한 단계 격상시킨 것은 지난 93년5월13일 金泳三(김영삼)대통령의 특별담화.
김대통령은 담화문을 통해 「문민 민주화를 향한 고난의 역정에서 광주민주화운동은 우뚝한 한 봉우리」 「문민정부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연장선에 있는 민주정부」라고 규정했다.
이 담화에 따라 정부는 광주 망월동 5.18묘역의 성역화작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어 지난 95년 김대통령의 「역사 바로세우기」선언으로 12.12 및 5.18사건의 관련자를 처벌하기 위한 특별법이 제정되자 5월18일을 법정기념일로 제정하자는 움직임이 본격화했다.
96년4월30일 광주시의회가 기념일제정을 촉구하는 내용의 결의문을 채택했으며 올 2월에는 광주시가 기념일을 제정해주도록 정부에 두 차례에 걸쳐 건의했다.
정부 역시 5.18의 법정기념일 제정에 기본적으로 동의하는 입장이었으나 관련사건의 재판이 진행중이라는 이유를 들어 유보해오다가 대법원 판결이 나오자 법정기념일을 제정하기로 확정했다.
앞으로 광주민주화운동 피해자의 국가유공자 지정, 5.18묘역의 국립묘지 승격 요구 역시 큰 무리없이 정부가 받아들일 것으로 보인다. 姜雲太(강운태)내무부장관은 『5.18의 법정기념일 제정은 잘못된 역사를 정부 스스로 인정하고 이를 바로잡는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며 『그러나 대통령의 이번 5.18행사 참석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송상근 기자〉
▼ 광주시민 반응
정부가 5.18 국가기념일 제정방침을 확정한데 대해 광주시민들은 『뒤늦은 감이 있지만 항쟁의 의미를 국가적으로 인정받게 됐다』며 대부분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그러나 당장 이달말 완공을 앞두고 있는 5.18신묘역 국립묘지지정 및 희생자 국가유공자 예우문제가 「기약없이」 늦춰진데 대해서는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특히 일부 유족들은 『국립묘지 승격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희생자 묘를 이장하지 않겠다』고 반발, 새 묘역에서 열릴 예정인 17주기 기념식의 원활한 진행여부가 불투명하다.
宋彦鍾(송언종)광주시장은 이날 『이번 일은 5.18이 비로소 법과 제도에 의해 공식적으로 기념되고 그 숭고한 정신이 후세에 길이 계승되는 출발점을 국가차원에서 제시했다는 점에서 큰 뜻이 있다』고 말했다.
송시장은 『이같은 역사성을 획득하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광주시민과 5월 관련단체 회원들의 줄기찬 투쟁의 결과』라며 『국립묘지승격 등 나머지 미해결과제들도 법과 순리에 따라 순차적으로 해결될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5.18기념재단 李鋼(이강)상임이사는 『기념일 제정만으로 5월문제가 완전 해결됐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정부가 기념일과 함께 국가유공자 예우 등 다른 문제도 일괄 해결했어야 마땅했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광주〓김권·정승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