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사태로 온나라가 떠들썩하다. 그런데 5조원이 넘는 국민 부담과 그 여파로 인한 경기침체 등 경제적인 악영향만 집중 부각되고 있다.
반면 국민들에게 끼친 엄청난 심리적 피해와 보상받을 길 없는 정서적 손실은 간과되고 있다. 그런만큼 국민의 입장에서도 건강하게 대처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첫째는 한보사태와 관련해 치밀어오르는 분노감이 주는 정서적 신체적 피해다. 장본인인 정태수한보총회장을 비롯한 많은 증인들이 반성은커녕 청문회에 나와서도 자신에게 불리하면 「선택적 치매현상」을 보여 더욱 분노를 샀다.
하지만 이런 반사회적 성격의 소유자에게 진실과 양심적인 증언을 기대하고 반성의 자세를 보이지 않는다며 분통을 터뜨린다면 현실적이지 못하다. 차라리 상식적인 판단력에 따라 좀더 현실을 직시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오히려 이런 반사회적 인사들이 다시는 우리 사회에 발붙일 수 없도록 하는데 우리의 심리적 에너지를 쏟는 편이 현명하다.
둘째는 우리가 그렇게 바랐던 소위 「문민정부」가 과거의 독재정권 이상으로 보여준 부정부패와 정경유착의 고리를 확인한데서 오는 충격과 실망이다. 더불어 청문회를 통해서 진실을 밝혀내기보다는 상대 정당과 정적의 흠집내기에만 몰두하는 정치인들을 보면서 느끼는 분노와 환멸도 심리적 무력감과 좌절감으로 이어져 엄청난 해를 끼치고 있다.
이같은 작태는 국민의 정치수준을 얕잡아보는 자세라 하겠다. 적당히 넘기고 시간만 흐르면 유권자들이 또다시 자신을 뽑아주리라 생각하기에 가능한 연출 아닌가. 이러한 정치인들은 다음 선거에서 냉철한 투표권을 통해 과감히 도태시키는 성숙한 정치의식을 보여줄 일이다.
셋째는 기대했던 청문회가 진실을 속시원히 밝혀내지 못해 국민들의 마음에 커다란 상처를 주었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효과가 있었느니 없었느니 식의 흑백논리로 평가해 실망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오히려 『청문회에 실망했지만 그래도 진실의 일부는 밝혀냈다』는 현실적인 자세가 요구된다.
이번 한보사태와 청문회를 통해서 우리는 사람이 바뀐다고 해서 「문민정부」가 저절로 이뤄지는 건 아니라는 큰 교훈을 얻었다. 한보사태의 궁극적인 연출자도 관객도 주인공도 바로 우리 국민 모두였다는 책임의식을 통감해야 한다. 나아가 깨끗한 양심선거를 통해 보다 발전된 정치를 꾸려가도록 다짐해 보는 건강한 자세를 지녔으면 한다.
채규만(성신여대교수·심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