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한달 남짓 있으면 하나 뿐인 딸아이가 시집을 가게 된다. 하얀 손수건을 가슴에 달고 초등학교에 입학한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하얀 드레스를 입고 부모곁을 떠난다는 것을 생각하니 감회가 새롭다.
나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호화혼수 문제로 매스컴에서 떠들 때마다 내 딸 아이는 맨몸으로 시집을 보낼양 도대체 호화혼수가 있을 수 있느냐며 지탄을 퍼붓곤 했다. 이제까지 검소하게 살아왔고 유행을 좇는 일 따위와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해왔고 또 매사에 나름대로 주관을 갖고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터이다.
그러나 막상 딸아이의 결혼날짜를 받아놓고 보니 예단이니 혼수니 하는 것에 신경을 쓰지않을 수가 없다. 거기다 주변에서 하나뿐인 딸인데 마음껏 잘 해보내라, 경상도 풍습은 사돈의 팔촌한테까지 예단을 해 보내야 된다는 등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전처럼 그냥 흘려보낼 수가 없게 됐다. 그런 말에 귀를 기울이고 신경을 쓰다보니 주관이 강하다 싶었던 내 삶이 조금씩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다.
아무리 최선을 다해 혼수를 마련한다 해도 형편상 호화혼수와는 거리가 멀지만 전에 아무것도 안해 보낼 것처럼 큰소리 치며 패기만만하던 내 모습은 이미 아니다. 내 소중하고 사랑스런 딸이 행여 혼수때문에 남편이나 시댁 어른들로부터 구박이나 받지 않을까, 예단이 형편 없다고 친척분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당하지나 않을까….
요즘 나는 딸의 가장 중요한 문제, 새롭게 시작되는 결혼생활의 적응이나 삶의 올바른 가치관 같은 문제보다 이런 외적인 일들에 더 골머리를 앓고 있다.
아주 오래전 작가 박경리씨가 어느 잡지에 쓴 글이 떠오른다. 「이 세상 무서운 사람이 없었는데 외손주 초등학교 입학시킨 후 그 손주 담임생님이 제일 무서워지더라고」 그 심정 이제야 알듯 하다. 요즘 딸아이의 시부모 되실 어른이 왜그런지 어렵고 무서워지는 기분이다. 그분들은 아주 인자하시고 인상이 좋은 분들임에도 불구하고. 하지만 오래전부터 결심해온 일은 흔들림 없이 꼭 실천하리라 다시 한번 다짐해 본다. 필요이상의 혼수 마련은 결코 안할 것이며, 결혼비용의 십분의 일은 꼭 장학금으로 사용하며, 정성스레 마련한 예단선물 안에 성경 한권과 시집 한권을 꼭 넣어 보내리라고.
박홍자 (서울 종로구 청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