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편지]이기현/다단계판매 꾐에 명퇴자 퇴직금만 날려

  • 입력 1997년 4월 28일 08시 57분


직장에서 명예퇴직한 후 다단계 판매의 꾐에 빠졌었다. 퇴직한 사실을 안 한 친구가 한달동안 계속 전화를 통해 안부를 물어왔다(초기 환심사기). 그러던 친구는 앞으로 무슨 일을 할거냐며 만나서 차나 한잔하자고 했다(초기 접근단계). 아무 생각 없이 친구를 만났다. 과거의 직장 가정 취미 사업얘기 등 관심있는 일들에 관해 묻던 친구는 좋은 일자리가 하나 있다며 추천해 주겠다는 것이었다(중간접근―미끼). 특별히 할 일도 없던터라 며칠 후 그를 따라 사업설명회를 한다는 곳으로 갔다. 그곳은 바로 다단계 판매 조직원 교육장이었다(마지막 낚시단계). 그때까지도 그게 다단계의 마수에 걸려든 상황이란걸 몰랐다. 명예퇴직후 아무도 거들떠 봐 주지않는 상황에서 그 친구의 위로와 격려가 너무나 고마웠다. 끊임없이 찾아오는 무기력과 절망감, 가족을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는 절박함 등이 한데 엉켜 나같은 명퇴자들은 손쉽게 빠져드는게 당연했다. 결국 건강보조식품 50만원어치를 스스로 구입하면서 다단계 판매의 조직원이 됐다. 전에 근무하던 직장 동료들에게 권하기도 쑥스럽고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판매하기엔 용기가 나지않아 벙어리 냉가슴만 앓았다. 한달쯤 지났을 때 다단계 판매에 속은 것이라며 가족들이 펄펄뛰었지만 반품은 쉽지 않았다. 약효는 물론 인체에 대한 유해 여부도 잘 모르는 걸 남에게 되팔기도 양심이 허락지 않아 모두 버리고 말았다. 이기현 (충남 천안시 용곡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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