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급을 얼마나 올릴지 노조가 결정하세요. 회사는 노조가 요구하는 대로 100% 수용하겠습니다』
『회사가 먼저 살아야지요. 회사가 경영사정을 감안해 결정해주세요』
「형님 먼저, 아우 먼저」하는 이런 식의 노사대화는 부산 사하구에 있는 동성화학에서 실제 있었던 얘기다.
신발용 접착제, 골프용품 등을 만드는 근로자 6백50명 규모의 이 회사에서 이런 거짓말같은 일이 벌어진 것은 지난해 1월초부터.
白正鎬(백정호·40)회장은 전 사원이 모인 시무식 연설에서 느닷없이 『올해 임금교섭에서 회사측은 노조가 어떤 협상안을 제시하든 무조건 수용하겠다』고 선언했다. 회사측이 노조측에 전권을 위임한 것은 거의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었다.
노조 집행부는 의구심을 떨치지 못한 채 12%인상안을 제시했고 회사측은 약속대로 이를 그대로 수용했다.
이때 마련된 노사간 신뢰 분위기는 이 회사의 가장 큰 경쟁력이 됐다. 근로자들은 「불량률 제로 운동」 등을 통해 생산성 향상에 힘썼고 회사측은 근로자들에게 항상 경영내용을 공개, 투명한 경영을 해나갔다.
그 결과 신발업계의 불황을 뚫고 지난해 매출액 15% 증가, 순익 42억원이라는 믿을 수 없는 경영실적을 올렸다.
올해 임금협상에선 노조가 화답했다. 노조는 대의원대회에서 임금인상을 회사측에 위임키로 결의했다. 이에 따라 회사측은 임금을 5% 올렸다.
노동법개정 파동도 이 회사는 무난히 넘겼다. 경영진은 진작부터 『우리 회사는 정리해고를 하지 않을 테니 걱정말라』고 약속했다. 백회장은 지난달엔 모든 사원의 부인들을 호텔로 초청, 이같은 약속을 재다짐했다.
노조는 상급단체인 화학노련에 속해 있지만 파업 등 단체행동을 자제했다. 경총이 최근 단체협약에 변형근로제를 도입하고 노조전임자를 감축하라는 지침을 내려보냈지만 이 회사는 『굳이 갈등의 소지를 만들지 않겠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동성화학은 근로자의 날인 1일 정부가 주는 「산업평화 동탑」을 수상한다. 상을 받기 위해 鄭昌秀(정창수)노조위원장과 함께 상경한 백회장은 작년초 임금인상률 결정권한을 노조에 위임한데 대해 『노조가 무리한 요구를 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도 솔직히 들었지만 우리 근로자들은 내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며 노조에 고마워했다.
정노조위원장은 『회사가 먼저 노조를 파트너로 대접해주는데 노조가 어떻게 무리한 요구를 하겠는가. 서로 먼저 양보하는게 함께 이기는 길임을 배웠다』며 백회장의 손을 마주잡았다.
〈이기홍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