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를 총칼로 진압한 가해자로부터 어떻게 돈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옆에서 죽어간 동료 얼굴이 떠오를 때면 지금도 부끄럼이 앞섭니다』
광주 북구청 정책개발계장 蔡永鮮(채영선·41)씨는 5.18보상금을 거부한 몇 안되는 「5.18 시민군」중 한 사람이다.
지난 89년과 93년 정부보상 때 보상금을 수령한 5.18관련자는 모두 3천4백33명. 지금까지 수령을 거부한 사람은 채씨를 포함해 4,5명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채씨는 두차례 걸친 보상에서 신청서를 내지 않아 보상금이 얼마인지 모른다. 다만 구금일수와 부상정도를 계산한 금액이 3천만원을 조금 넘을 것이라는 얘기만을 들었을 뿐이다.
채씨는 전남대 국문과 2학년 재학중이던 80년 5월25일 시민군에 가담했다. 전투경찰을 지냈던 그는 군 경험때문에 전남도청 회의실을 지키는 제5소대장을 맡았다.
최후진압이 시작된 27일 새벽 채씨는 소대원 18명과 함께 도청에서 2백m 떨어진 광주 YWCA건물에서 계엄군과 총격전을 벌이다 체포됐다. 곧바로 상무대 영창으로 끌려간 채씨는 수사관들의 고문에 시달리다 가담정도가 가벼운 「D급」으로 분류돼 수감 67일만인 8월2일 석방됐다.
『혐의사실을 부인하면 곤봉으로 무자비하게 맞았습니다. 지금도 그 후유증으로 관절이 아프지만 저보다 훨씬 심하게 맞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대학졸업후 5년여동안 행정고시를 준비하다 지난 89년 7급공무원 시험에 합격, 북구청에 근무하고 있는 채씨는 『5.18이 국가기념일로 제정된 것만으로 어느 정도 보상은 이뤄진 것 아니냐』고 말했다.
〈광주〓정승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