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돈암2동 동소문 재개발 아파트의 옹벽이 무너져 인명이 희생되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여름 장마철을 앞두고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사고가 또 일어나지 않을까 불안해하고 있다. 사고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원인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예방조치가 있어야 한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사고원인은 옹벽의 부실시공인 것으로 보인다. 언론보도 역시 이번 사고를 부실시공의 관점에서 주로 다뤘다. 그러나 직접적인 원인이 설령 부실시공이라 할지라도 이번 옹벽붕괴 사고의 근본원인은 따로 있다.
이번에 무너져내린 옹벽의 높이는 약 20m로 아파트 6,7층 높이에 해당한다. 내 집 바로 앞이나 뒤에 이런 엄청난 높이의 옹벽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고 봐야 한다. 동소문동 아파트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구릉지 재개발 아파트 단지에는 곳곳에 이런 옹벽이 있다.
구릉지는 평지와 달리 지형 자체가 경사지다. 경사지에 집을 지을 때는 땅을 깎고 메워 평지를 만들어야 하므로 어느 정도 지형훼손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문제는 지형훼손의 정도에 있고 그 정도는 구릉지 위에 세워지는 집의 덩치에 비례한다. 단독주택을 짓는다면 지형훼손이 적고 옹벽도 높지 않다. 반면 구릉지에 고층아파트를 짓는다면 과도하게 깎아내고 메워야 하므로 지형이 크게 훼손되면서 옹벽 또한 높아지게 마련이다.
결국 구릉지 아파트 옹벽사고의 근본 원인은 구릉지에다 평지에서처럼 고층아파트를 짓는 현재의 재개발사업에 있다. 많은 가구를 지을수록 조합과 건설업체에 유리한 합동재개발 방식 탓에 구릉지 재개발 아파트는 갈수록 고층화 고밀화하고 있다. 더 많은 물량을 확보하려고만 하니 구릉지의 지형과 녹지가 크게 훼손되고 옹벽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나아가 주거환경과 도시경관이 황폐해지고 주민들의 안전마저 위협받게 된다.
구릉지 아파트의 또 다른 옹벽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옹벽의 부실시공을 막는 노력이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구릉지 재개발아파트의 밀도를 낮추고 덩치를 줄이는 조치를 시급히 강구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일반 주거지역의 세분화 △주택개량 재개발 기본계획 수립 △경관관리지구 지정과 같은 제도적 장치가 조속히 완비돼야 한다. 나아가 질보다 양 위주인 현재의 재개발 사업방식이 근본적으로 개선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석(서울시정개발연구원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