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은 「호국 보훈의 달」이다. 우리는 나라와 겨레를 위해 「거룩한 응달」이 되신 선열과 호국용사들을 밝은 햇살 속으로 불러내야 한다. 오늘 우리에게 편안하고 복된 삶이 있다면 그 바탕에는 이국의 황량한 들판이나 조국의 이름없는 산비탈에 누운 그분들의 외로운 넋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교만과 이기심에 찌든 우리 자신을 뼈아픈 각성으로 되돌아보아야 한다.
우리는 수많은 위기를 극복하고 민족자존을 이어온 불굴의 민족임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그러나 이를 뒤집어보면 국난극복의 교훈을 민족의 정신적 에너지로 승화시키지 못하고 위기를 되풀이한 안타까움도 없지 않다. 국가 공동체를 위한 헌신과 희생을 최고의 가치로 존중하고 그에 합당한 예우를 바치는 풍토가 요구된다. 그런데도 보훈문화는 여전히 음지에 머물고 있다. 보훈을 그늘진 곳이나 못사는 계층을 보살피는 원호사업으로 인식하는 한 우리는 그 어둠에서 벗어날 수 없다.
얼마 전 전상용사 한분으로부터 매우 감명깊은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제시 브라운 미국 보훈부장관과 함께 사진을 찍을 기회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휠체어를 탄 자신과 높이를 맞추기 위해 무릎을 꿇는 장관의 태도를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는 얘기다. 이같은 전상용사에 대한 참된 존경과 예우는 미국이 어떻게 세계 중심국가로 우뚝 서게 됐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예가 아닌가 한다.
경제력만이 국력의 전부는 아니다. 선진국일수록 나라를 이끌고 가는 정신적 가치를 중시하고 있다. 나아가 이를 국민들의 마음 속에 형상화해가는 노력을 조금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애국지사나 호국용사들이 제자리에 바로 서지 않고서는 국민의 가치관도, 사회정의도 바로설 수 없음은 자명하다. 이분들을 더 이상 응달에 남겨둬서는 안된다. 이제 그 거룩한 응달에 따사로운 햇살을 비춰야 한다. 나라를 위한 헌신이 진정 명예로운 것이 될 때 민족의 장래도 보장되는 법이다. 보훈은 단순한 생활지원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정신을 창출하는 일이다. 그러기에 보훈은 국민된 책무다.
김종성<국가보훈처 이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