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가 들어서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적어도 겉으로는 사회 전반이 온통 「개혁」과 「세계화」의 구호로 일관했다. 기존의 질서를 부정하면서까지 일대 변혁을 추구해 왔지만 과연 남은 것은 무엇인가. 지도자가 『세계화』를 외친다고 마치 임기 안에 「세계화」를 완성해야 한다는 발상은 착각이고 망상이다. 무엇이든 서둘러 입안하고 시행하려는 모습을 보면서 심각한 우려를 갖게 된다.
교육개혁만 해도 그렇다. 개혁과 세계화를 화두로 서둘러 발표해 왔던 놀랄만한 아이디어들로 교육자들은 정신이 없을 지경이다. 제도개선은 요원한데도 특성없는 대학들을 양적으로 늘려놓고 하루 아침에 서구 수준으로 세계화시키겠다는 발상부터 어처구니가 없다. 온갖 학과를 있는대로 개설해 대학들은 특성도 전문성도 없는 「잡화상」으로 변했다. 그러고도 「국제화 시대의 경쟁력」 운운할 수 있겠는가. 2005년이 못돼 상당수의 대학들이 신입생을 채우지 못하리라 예상되는데도 새로운 대학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난다. 경쟁력이 약한 대학들은 벌써부터 교육보다 「재테크」 연구에 머리를 싸매고 있다.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 했다. 하루 아침에 옷갈아 입듯 바꿔치울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뭐가 그리 급하다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난리들인가. 소위 대통령자문기구라는 교육개혁위원회가 또 한번의 「깜짝쇼」로 일을 내고 말았다. 「서울 고려 연세대 정원 대폭축소」라는 보도를 접하면서 걱정보다는 차라리 두려움이 앞섰다. 이들 3개 대학을 짧은 기간에 인위적으로 대학원 중심 연구대학으로 육성한다면서 10년간 2조원을 쏟아붓는다는 얘기다. 해당 대학이야 환영할 일이겠지만 우리의 열악한 교육재정을 감안한다면 걱정이 아닐 수 없다. 분명 교육의 또 다른 부문에서 그 부담을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에 선정되지 못한 대부분의 대학이 상대적인 피해를 보게 되리라는 것도 불을 보듯 훤하다.
교육의 질과 교육환경은 자생력을 바탕으로 개선돼야 한다. 우리의 상위권 대학도 세계시장에서는 보잘 것 없는게 현실이다. 일시적인 「수혈」로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더구나 「재정보조」라는 약효가 떨어질 때 쯤에는 더욱 심각한 후유증이 예상된다.
지금은 몇몇 특정학교를 재정지원하는 미시적인 처방을 내릴 때가 아니다. △입시제도개선 △돈 적게 드는 교육 △대학별 특성화 지원 등 거시적인 제도개혁이 절실한 때다.
고도홍<한림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