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石씨 폭행치사 수사]『현장 말끔』 증거확보 비상

  • 입력 1997년 6월 6일 20시 17분


한총련 지도부가 李石(이석·23)씨 폭행치사사건 수사의 과녁으로 떠오르고 있다. 서울 성동경찰서는 지난 5일밤부터 이 사건 용의자와 목격자를 밤샘조사, 1∼4명의 한총련지도부가 이씨의 감금폭행에 직 간접적으로 개입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6일 구속영장이 청구된 權純郁(권순욱·24·건국대 농화학과 2년)씨 등 용의자 2명은 『지난 4일 밤11시경 교지 자료실에 들어갔을 때 마스크를 쓴 간부 1명이 이씨를 조사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최초 이씨를 감금한 吉素延(길소연·24·여·한양대교육학과 졸)씨는 『이날 5시반경 마스크를 쓴 한총련 간부와 함께 이씨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목이 졸린 뒤 이씨를 서총련 투쟁국장 주길남에게 인계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지난 4일밤 한양대에서 빠져 나가다 붙잡힌 한총련 조국통일위 수행실장인 李元眞(이원진·28·건국대 건축학과 4년)씨에게서 『당시 프락치를 붙잡아 조사중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진술도 받아냈다. 이에 따라 경찰은 한총련 지도부들이 이씨 감금 사실을 사전에 알고 있었을 것으로 보고 8일부터 한총련 의장 姜渭遠(강위원·전남대 총학생회장)씨 등 한총련간부들을 차례로 소환조사할 방침이다. 경찰은 한총련 지도부의 개입 사실을 밝혀내는데 주력하고 있으나 소환자들이 비협조적으로 나와 애를 먹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목격자들도 수사에 비협조적인 것은 마찬가지. 한총련은 사건 발생직후 『수사에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밝혔으나 자진출두한 4명의 목격자들은 『폭행장면을 직접 목격하지는 못했다』 『검은 얼굴에 키가 큰 사람이 이씨를 조사했다』는 등 사건의 본질을 비켜가는 진술로 일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의 현장조사 실시 여부도 불투명하다. 한총련이 폭행에 사용한 경찰진압봉과 이씨의 핏자국이 묻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청바지와 남방셔츠 등 결정적인 증거물들을 사건현장에서 모두 치웠기 때문. 학생들은 목격자와 용의자의 자진출두 직전까지 출두 시간과 장소를 놓고 「공정한 수사」를 구실로 경찰과 줄다리기를 벌이는 오만방자한 태도도 보였다. 결국 자수한 학생들의 진술에 의존해 수사를 벌이고 있는 경찰은 한총련 지도부와 사건발생 당시 학생회관에 남아있던 학생들을 소환, 당시의 행적을 밝히는 방식으로 수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경찰은 이씨 폭행치사 사건과는 별도로 이번 폭력시위를 주도한 한총련 지도부와 사수대를 검거하는 데 총력을 다할 방침이다. 경찰은 한총련 지도부 2백50여명의 명단과 수배전단을 작성, 내주초 전국의 일선 경찰서에 배포키로 했다. 〈이철용·박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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