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대입제도는 「국가고사+내신성적+대학별고사」라는 세가지 틀 중 어디에서 문제가 튀어나오면 이를 망치로 내리치는 두더지 전자오락기식이었다. 이를 반세기나 반복했지만 입시병폐는 고쳐지지 않았다. 병의 원인이 다른데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는 세상의 가치를 수직적으로 평가하고 재산이나 출세의 높이를 행복이나 성공의 척도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일류대→일류직장→성공」이라는 인식이 널리 번진데다 인간관계마저 권력을 중심으로 학연 지연 등이 얽혀 있다. 「권력→금력→친분→능력」의 순서로 출세하기 때문에 능력만 있어서는 이 아귀다툼에 끼어들 틈도 없다고들 한탄한다.
이런 가치관과 분위기에서 어느 부모가 자식을 일류대에 넣기 위해 기를 쓰고 경쟁하지 않겠는가. 공교육이 부실해서 사교육에 승패를 거는 것도 아니다. 공교육은 모두에게 똑같으니 남을 이길 수 있는 충분조건이 못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대입제도를 아무리 바꿔도 거기에 맞는 과외는 또 생겨나게 마련이다. 학부모들은 자식의 적성이나 능력에 관계없이 오직 일류대만을 목표로 극성을 부리고 학생들 역시 아까운 젊음을 시험선수 훈련을 받는데 바치고 있다.
이를 고치는 방법은 성공이나 행복에 대한 잘못된 생각의 기준을 바꾸는 길 뿐이다. 말로만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해서는 안된다. 자신의 적성과 관심에 따라 선택한 직업을 소중히 여기며 성실하게 일하는 것이 성공이고 행복이라는 직업관을 세우는 한편 이를 뒷받침할 사회적 제도를 갖춰야 한다.
정신생활은 상류를 지향하되 경제생활은 중류를 지향하고, 남는 힘으로 남을 많이 도울수록 성공이며 자연과 예술의 아름다움을 풍부히 느낄수록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 남보다 위에 올라서는 것이 아니라 남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행복이라고 느끼게 된다.
우리 조상들은 이미 3백년전 공리공론의 성리학에서 벗어나 실제 사물로부터 이치를 깨닫자는 실학을 일으켜 생각의 방향을 틀었다. 이제 우리가 제2의 실학운동을 일으킬 때다. 사물의 우열을 수직적으로만 따지는 막힌 가치관에서 벗어나 세상을 수평적으로 넓게 보며 다양한 가치를 인정하는 열린 생각을 해야 한다.
생각의 방향을 허상에서 실상 중심으로 바꾸고 「눈치」에서 「양심」 중심으로 줏대를 바로세워야 한다. 정부는 이같은 교육개혁을 제도적 장치로 뒷받침하고 언론은 의식개혁운동을 펼쳐나가야 한다.
이경복(서울중부교육청 학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