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주내내 국내언론을 떠들썩하게 했던 훈할머니 사건은 검찰의 유전자 감식결과 가족이라고 주장했던 사람들과는 무관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로써 훈할머니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조만간 일반의 관심에서 지워지지 않겠느냐는 성급한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훈할머니의 가족관계를 규명하는데만 매달린다면 자칫 문제의 본질을 외면하는 결과를 낳고 만다. 이번 사건을 통해 우리는 아직도 동남아지역 어디엔가 살아 있을지도 모를 제2, 제3의 훈할머니들의 실태조사에 정부와 국민 모두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새삼스런 사실을 확인하게 됐다.
필자는 대한불교조계종의 지원을 받아 1박2일의 짧은 일정으로 지난 18일 캄보디아 프놈펜에 도착, 훈할머니를 만나고 왔다. 일본군위안부 할머니들의 보금자리인 「나눔의 집」을 운영하고 있는 필자로서는 훈할머니가 군위안부라는 사실에 누구보다 깊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우리 파견단은 훈할머니와 관련해 현지에서는 여러가지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실에 근거한 연구조사가 선행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현지 언론과 교포들은 한국에서 온 우리 일행에 미처 확인되지 않은 훈할머니 관련사항의 사실여부에 대한 분명한 해답을 요구했다.
경위야 어떻든 우리 일행이 훈할머니와 4시간 동안 면담하며 증언을 들어본 결과 여러가지 정황으로 보아 훈할머니가 한국인이자 군위안부였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하지만 짧은 시간의 면담에서 우리말을 전혀 기억해내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을 뿐이었다. 그 어떤 사안도 단정적으로 확신할 수 없었다는게 솔직한 심정이다. 따라서 다소 시간이 걸릴지라도 사실에 근거한 전반적인 증언 채록작업이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이런 순서를 생략하고는 어떤 증언도 단발적이고 사람들의 호기심만을 자극할 뿐 훈할머니의 진실을 밝히는데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다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 훈할머니의 아픔을 결코 방관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이미 알려진 것처럼 훈할머니는 머나먼 나라 캄보디아에서 기억하기조차 싫은 악몽같은 세월을 보낸 가슴아픈 상처를 지니고 있다.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고향에서 보낼 수 있으리라는 일념으로 현실을 힘겹게 지탱해가고 있다.한인간의 개인사로 보나 인도적인 차원으로 봐서 훈할머니가 기어이 과거의 기억을 되살릴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과 아낌없는 지원을 보내야 한다. 어쨌든 훈할머니는 꿈에도 그리던 가족은 못찾았지만 기억속에 아스라이 남아 있는 고향을 방문하게 될 것이다. 고향땅을 밟는 가슴벅찬 감명으로 훈할머니가 고국과 고향의 기억을 되살려내고 마지막 남은 소원을 풀 수 있도록 우리 모두 힘을 모아드려야 한다.
혜진(나눔의집 원장/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