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시험운영되는 전자주민카드 제도와 관련해 의구심이 증폭되고 있다. 국민의 편의를 위해 도입하는 것으로 홍보된 이 제도가 오히려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것이라는 우려마저 확산되고 있다. 따라서 사회적 공론화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도 않은 채 제도 시행만을 서두르는 정부의 처사는 능사가 아니다.
「항목 1,5,7 전적으로 승인. 항목 6에 포함된 제안 지극히 어리석음. 사상죄에 가까움 취소. 기계류 총경비 합산 계산서 도착 전 건설 중단. 메시지 끝」.
이는 영국 식민지 미얀마에서 경찰관을 지냈던 조지 오웰의 미래정치소설 「1984년」의 일부다. 그는 이 소설에서 기계부품처럼 파편화된 인간 군상을 중앙집중형 첨단매체로 감시 통제하는 「빅 브라더」의 무서운 힘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지식인 및 시민단체가 전자주민카드의 도입을 빗대 「빅 브라더」의 출현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전자주민카드는 지난 83년 수립된 국가기간전산망 구축방안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행정전산망 사업은 세계 어느 나라도 시도해본 적이없는「국민신상정보집약관리시스템」이다.70년대와 80년대에 유사한 전자카드식 주민증의 도입을 시도하려던 미국 프랑스 호주 뉴질랜드 등에서는 모두 국민의 반대에 부닥쳐 무산되고 말았다.
우리 국민들은 지난 91년 윤석양이병이 폭로한 보안사 민간인 사찰사건과 백화점의 고객명단을 살인 리스트로 악용한 「지존파」사건, 그리고 주소지 유출로 인한 이한영씨 피살사건 등을 잘 기억하고 있다. 국민의 신상정보를 둘러싼 권력과 범죄의 유착 가능성은 언제나 살아 있다.
우리는 지금 「정보가 돈」인 시대에 살고 있다. 『주소지와 가족관계가 집적회로(IC)카드로 관리되는 것 자체가 반인권적 발상』이라는 어느 변호사의 경고는 프라이버시에 대한 개념조차 정립하지 못한 우리 사회의 후진성을 찌르는 「날카로운 침」이었다.
21세기 정보화는 20세기에 힘들게 쟁취한 국민주권과 민주주의의 또다른 표현이다. 전자주민카드 제도에는 개인 신상정보의 유통 절취 매매 날조 망실 등 비상한 위험 가능성이 있다. 반면 국민들의 인식과 동의수준은 상대적으로 낮다.
정부는 민간 전문가들과 시민단체들의 우려와 비판을 겸허히 수용하고 조속한 시일내에 「사회적 공론화」를 꾀해야 한다. 아울러 각계의 우려를 반영한 합리적 보완책이나 민주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김영환(국회의원·국민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