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김계유/『여순사건 위령탑부터 세워라』

  • 입력 1997년 7월 10일 08시 18분


여수시가 무명어부들의 넋을 기리는 위령탑을 건립하기 위해 4억원의 예산을 들여 어민공원을 만든다고 한다. 여수는 예로부터 어업으로 발전해온 고장인만큼 수많은 어부들이 희생된 것이 사실이다. 어민공원 문제는 몇년전부터 일부 어민단체 사이에서 거론됐지만 여순사건 희생자들의 위령탑부터 먼저 만들어야 한다는 여론에 밀려 아직까지 미뤄져 왔다. 그런데 이제 와서 무엇 때문에 여순사건 희생자 위령탑보다 어민공원을 먼저 세우겠다는 것인지 그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 도대체 여수시 당국자는 여순사건의 실상이 무엇인지 알고나 있는지 묻고 싶다. 49년이란 세월이 흘러 그때의 일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다. 당시 이승만 독재정권은 여수 사람들이 난을 일으키면서 군대를 끌어들인 것으로 잘못 알고 여수를 아예 「빨갱이 고장」으로 단정, 진압군을 투입했다. 그러나 실제로 사건에 가담했던 사람들은 반란군인 14연대를 따라 입산해버리고 마을에는 무고한 양민들만 남아 있는 상태였다. 결과적으로 여수에 들이닥친 진압군은 반란군소탕전이 아닌 시민소탕전을 벌인 셈이 됐다. 그때 희생자 숫자는 당시 정부 발표로도 1천2백여명이었으나 사실은 그보다 훨씬 더 많았을 것이다. 당시 필자는 살육의 현장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나왔지만 그 수법이 너무나 잔인해 지금도 소름이 끼친다. 차제에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여수 순천과 비슷한 사건들이다. 제주도에서는 이미 「제주 4.3항쟁」으로 이름이 바뀌었을뿐 아니라 개인 보상까지도 끝난 상태로 알고 있다. 또 경상도 거창 산청 함양 세곳에서는 주민들의 국회청원에 의해 거창사건 등 관련자에 대한 특별조치법이 만들어져 당시 억울하게 희생된 사람들에 대한 명예회복이 착착 이루어지고 있다. 폭동으로 몰렸던 광주 5.18민주화운동이 국가기념일로 승화된 오늘날 여수 순천시민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는 자명하다. 그런데 그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데도 그런 신원(伸寃)운동은 커녕 49년이란 세월이 흘러간 오늘까지 이들에 대한 돌비석 하나 없으니 어디 말이 되는가. 이들 희생자들의 위령탑부터 먼저 세우고 어민위령탑은 다음으로 미루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김계유(국사편찬위/사료조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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