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밤 10시반. 오늘도 남편은 어김없이 그 시각에 집을 나선다.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밤11시반 여수행 기차를 타기 위해서다. 벌써 2년. 남편은 매주 토요일이면 밤9시 집에 돌아와 이튿날인 일요일밤 직장으로 돌아가기 위해 집을 나선다.
남편이 지방으로 발령이 났으나 고3 고1 두 아이의 교육 때문에 서울을 떠나 따라가지 못하고 주말부부 생활을 하고 있다. 아이들의 좀더 나은 미래를 위해 우리가 희생하자는 남편의 말에 위안을 삼으며 주말이면 온 가족이 만나 그동안 쌓였던 가정과 학교생활 이야기로 꽃을 피운다.
결혼생활 20여년. 무드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무뚝뚝하기 짝이 없는 남편과 살면서 서운할 때도 많아 다투기도 하고 미워도 했었다. 젊었던 시절에는 이기적인 것 같고 자기만 위해달라고 했다. 평생을 살아도 사랑한다는 말 한번 할줄 모르는 남편과 이대로 살아야하나 하고 괴로워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사랑이 부족하다고 어떻게 나에게 주어진 모든 의무를 소홀히 할 수 있을까. 주부 한 사람이 희생하면 온가족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생각에 참고 살아왔고 가정을 위해서는 견딜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겨왔다.
주말부부가 된 우리는 뒤늦게 서로가 소중한 관계인 것을 깨닫게 됐다. 지금도 별로 말이 없는 남편이지만 헤어질 때 내 손을 꼭 잡아줄 때면 마음으로 깊은 사랑을 느낀다. 사랑한다는 것이 꼭 말로 표현해야만 알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터득한 것이다.
오늘은 유난히 짐이 많았다. 여름양복 와이셔츠 김치 세가지. 그러나 힘들다는 내색 없이 들고 나가는 남편을 배웅하면서 그 뒷모습이 왠지 가여워 마음이 아프다.
「현정 아빠, 사랑해요. 우리는 당신만을 믿고 산답니다」. 마음속으로만 외칠 뿐 손도 흔들지 못하는 나에 대해 남편도 매력없는 아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홍복순(서울 도봉구 창5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