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이어령/피서와 자연발견

  • 입력 1997년 7월 27일 20시 38분


자동차가 시속 1백㎞로 달리면 엔진은 금방 불덩어리가 된다. 그래서 냉각장치가 돼있다. 그런데 타조는 수냉식이든 공냉식이든 특별한 장치가 없이 자동차만큼 달려도 통닭구이가 되는 법이 없다. 인간이 만든 기계와 하나님(자연)이 만들어낸 생체는 그만큼 차원이 다르다. ▼ 다가올 「바이오 시대」 ▼ 열(熱)만이 아니다. 열차가 속도를 내고 달리면 엄청난 소음이 생긴다. 일본의 신칸센 열차는 빨리 달리는 기술을 개발해 놓고도 소음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그러나 부엉이는 아무리 잽싸게 날아도 조용히 먹이에 다가갈 수 있다. 밤의 정적에도 불구하고, 또 그 몸집에도 불구하고 부엉이가 소리없이 날 수 있는 것은 날갯죽지 앞에 날카로운 깃털들이 돋아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것이 소음을 일으키는 공기의 흐름을 중화시켜 버린다. 새로 개발된 신칸센은 부엉이의 그런 원리를 이용해 소음을 대폭 줄였다.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말은 낭만주의자들의 꿈이 아니라 이제는 과학자들의 현실목표가 되고 있다. 그것이 정보시대 다음에 오게 된다는 바이오 시대다. 농사를 짓는데 화학비료를 주고 농약을 뿌리는 것은 산업시대의 영농법이다. 심지어는 농작물을 키우기 위해 고엽제같이 잡초를 말려 죽이는 약까지 뿌린다. 그러나 앞으로는 자연의 생태계와 유전자를 이용하는 새로운 바이오 농법이 등장하게 될 것이다. 아직은 초보단계지만 벌레나 잡초를 제거하지 않고 오히려 농작물에 이용하는 새로운 자연농법이 등장하고 있다. 배추에 배추벌레가 있다는 것은 그것을 먹어도 된다는 건전한 신호로 보라는 얘기다. 벌레조차 끼지 않는 야채는 식품이 아니라 독극물인 셈이다. 그러니까 주부들도 보기 좋고 깨끗한 배추보다는 오히려 벌레먹은 야채를 선호하는 사고(思考)의 전환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배추벌레는 해충이 아니라 발효가 덜된 퇴비의 암모니아 가스를 먹고 그것을 양질의 퇴비로 바꿔주는 조력자로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배추를 사람들이 먹을 때쯤 되면 배추벌레는 성충이 돼 더이상 배추를 먹지 않게 되므로 자연변화의 리듬은 인간과 벌레의 공생을 가능케 해준다. 잡초를 뽑지 않고 적당히 놔두면 농작물들은 그것들과 경쟁하느라 성장이 한결 빨라진다. 그리고 농약을 뿌리지 않아도 병충을 이겨낼 만큼 야생화한다. 인간의 과보호로 약해질대로 약해진 농작물들이 잡초 사이에서 자연의 힘을 되찾고 그 맛도 한결 차지고 싱싱해진다. ▼ 相生의 법칙 배우자 ▼ 연일 폭염으로 냉방기를 틀어대는 바람에 전력이 바닥났다고 한다. 그런데도 땀을 식히지 못하고 산으로 바다로 도시인들이 빠져 나가는 것은 냉방장치나 선풍기 바람이 강바람이나 솔바람을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선풍기 바람은 규칙적인 기계적 운동에서 생겨나기 때문에 한참 쐬면 시원한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러나 원두막의 바람은 그 방향이나 강약이 불규칙적이면서도 자연스런 변화의 리듬을 띤다. 여기에서 착안해 기계적인 움직임에 불규칙적 변화와 우연성을 주는 퍼지 선풍기를 만들어 대히트를 하기도 했다. 더위만을 피하는 피서철이 돼서는 안된다. 모처럼 도시를 떠나 자연을 접하면서 우리는 비생명적인 도시문명에 대해, 기울어져가는 산업문명에 대해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아이들에게 잡초와 함께 살아가는 자연의 상생법칙(相生法則)을 보여주어야 한다. 한 순간이라도 좋으니 피서철은 피도시 피산업 피문명의 철로 체험됐으면 싶다. 이어령(이화여대 석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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