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도 그리던 고향땅을 반세기만에 밟으니 목이 메입니다. 저를 불쌍히 여겨 가족들을 꼭 찾아주세요』
한국인 종군위안부로 알려진 캄보디아의 「훈」할머니는 4일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한 뒤 아리랑 노래를 부르며 기억되살리기에 안간힘을 썼다.
외손녀들의 부축을 받고 탑승교에서 내린 훈 할머니는 꿈에 그리던 고국땅을 밟고 만감이 교차한 듯 잠시 고개를 떨군채 상념에 잠겼다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했다.
흰색 블라우스와 진청색 치마를 입은 훈 할머니는 이날 3시간여의 비행으로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으나 기자들이 묻는 질문에 통역을 통해 또렷이 답변하는 등 고희가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정정한 모습을 보였다.
특히 도수가 높은 검정색 안경과 염주 목걸이를 착용한 훈 할머니는 캄보디아에서 모일간지 기자가 전해준 흰색 고무신을 신고 고국땅을 밟아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짐작케했다.
훈 할머니는 『내 이름은 나미입니다.혈육과 고향을 찾아주세요」라고 한글로 적힌 분홍색 마분지를 가방에서 꺼내들고 『불쌍히 여겨 가족들을 꼭 찾아달라』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애원했다.
이 호소문는 캄보디아에서 그동안 할머니를 돌봐준 프놈펜 주재 사업가 黃基淵씨가 적어준 글을 보고 훈 할머니가 직접 썼다고 손녀 렉 시나양(27)이 설명했다.
할머니는 또 고향의 바다와 산 절등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해 고향이 당초 추정된 인천일 가능성이 매우 큰 것을 암시하기도 했다.
아리랑노래를 불러보라는 취재진의 요청을 받은 훈 할머니는 또렷한 발음으로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까지만 부른 뒤 더 이상 기억이 나지 않는 듯 노래를 이어나가지 못했다.
훈 할머니는 10여분간 선채로 인터뷰에 응하다 피로가 누적된 듯 갑자기 주저앉았으나 곧이어 외손녀들의 부축으로 휠체어에 옮겨타고 출국장으로 빠져나갔다.
출국장에서 훈 할머니는 환영 피켓과 꽃다발을 들고 마중나온 나눔의 터(원장慧眞 스님)회원 10여명으로부터 간단한 환영인사를 받은 뒤 건강진단을 받기 위해 미리 대기한 앰뷸런스를 타고 인천 길병원으로 떠났다.
이날 훈 할머니의 방한에는 렉 시나(27) 잔니(19) 시눈(17)등 3명의 외손녀와 黃基淵씨의 친구 李光俊씨(40) 통역 金裕美양(15)등 5명이 동행했다.
金양은 캄보디아에서 선교봉사활동을 하는 부친 金漢植목사를 따라 지난 95년 프놈펜에 온 뒤 훈 할머니의 기억되살리기를 돕는 작업을 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