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는 3인종 4언어가 뒤섞여 있고 23개주 출신 장관 7명이 임기 1년의 대통령직을 윤번제로 수행하는데도 1인당국민총생산(GNP)에서 세계 정상을 이뤄낸 나라다. 화합과 일치의 결실이며 축복이다. 반면 혈통과 언어가 같은 우리는 경제가 무너지고 있는데도 사분오열된채 지역갈등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이 비극적 지역감정의 근원을 찾아내 제거한다면 능력있고 근면한 우리 국민은 다시 힘차게 일어나지 않을까.
사람의 성격과 운명은 출생조건과 성장환경에 의해 결정되며 국민의 사고방식은 사회구조와 제도의 산물이라는 것이 사회심리학의 통설이다. 우리는 일제식민구조 아래서 신음한 사실이 있다. 말과 글은 물론 성과 이름까지 다 빼앗긴 상황에서 국가가 있었을리 만무하다. 국가는 없어도 고향은 남아 있었기에 애국심은 없어도 애향심만은 병적으로 강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고향은 없어져버린 조국의 잔해였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집단적 무의식 속에서 조국과 고향을 혼동하고 국가의 운명보다 고향의 이익을 중시하는 전도된 가치관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이 지역감정의 기름통에 처음엔 집권당이, 나중엔 야당들도 불을 붙여 왔다.
고령의 정치지도자들은 청소년 시절 일제치하의 수직적 지시문화구조에 잘 적응한 분들이다. 수평적 토론문화 체험이 전혀 없기에 정당을 운영하면서도 미운 사람은 토론으로 설득하지 않고 내쫓거나 잘라버림으로써 여당도 야당도 토막내는 토막정당시대를 불러 왔다. 토막정당의 불씨들이 지역감정의 기름솥에 뛰어든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리라.
부패정치 역시 식민문화의 산물이다. 선진국에서는 돈받고 표파는 유권자가 없다. 조상들이 피흘려 쟁취한 결과물이 바로 투표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해방직후 투표용지를 거저 받았다. 거저 얻은 종이쪽지라서 돈과 바꿀 수도 있었으니 선거때마다 천문학적인 돈이 필요했다. 기술개발에 써야 할 돈도 정치판으로 들어가게 됐다. 돈을 안 바치면 기업이 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경제가 무너지게 된 것이다.
우리 모두 고백하고 서약해야 할 것이다. 『내 사고방식의 핏줄 속에는 식민문화의 검은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조국보다 고향이 소중하고 혼보다 돈이 귀하다는 엄청난 착각 속에 살아 왔음을 고백합니다. 이번 선거에서는 사람 됨됨이와 공약내용을 살펴본 뒤에 고향을 초월해서 투표하겠습니다』라고. 자손들의 밝은 장래를 위해서….
이찬구(정신문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