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냐공항 부근에 추락한 대한항공기에서 가슴에 가벼운 타박상만을 입은 채 기적적으로 생환, 6일 미 해군병원에 입원중인 홍현성씨(35·미국국적·사업)는 악몽같았던 사고순간을 회상하면서 몸서리쳤다.
홍씨는 『비행기 착륙 3,4분 전 동체가 심하게 흔들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착륙지점의 불빛이 보이지 않는데도 랜딩기어가 내려져 너무 일찍 내린다는 생각도 했다』고 말했다.
홍씨는 『비행기가 큰 충격없이 미끄러져 내려가 활주로에 착륙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비행기 창문으로 심하게 요동치는 나뭇가지들을 보는 순간 사고구나 하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며 『사고비행기의 랜딩기어가 산중턱에 걸리면서 기체가 앞으로 고꾸라졌고 이어 굉음과 함께 계곡에 처박혔으며 그 순간 비행기의 중간부분이 끊어진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는 순간적으로 일어난 사고라 승무원들이 안내방송을 할 겨를도 없었다고 말했다.
홍씨는 『때마침 좌석(앞쪽 세번째줄) 바로 위에 있는 비행기 동체부분이 부러져 있어 필사적으로 밖으로 빠져나오려고 했다. 그때 젊은 여자 한명이 발목을 잡고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시간을 끌면 비행기가 폭발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혼자 갈 수 없었다. 그 여자와 함께 비행기에서 빠져 나왔으나 여자의 옷에 불이 붙어 불붙은 부분을 찢어낸 뒤 내 옷을 벗어 입혔다』고 말했다.
홍씨는 비행기가 계곡에 충돌하는 순간에는 폭발하지 않았으며 자신이 비행기에서 나왔을 때 동체 앞부분의 2층에 불이 붙어 있었고 이어 뒷부분에서도 불이 났다고 말했다. 홍씨는 얼마 후 사고비행기에서 탈출한 한 여승무원의 요청으로 생존자를 구조하러 사고현장 가까이에 접근, 비행기 잔해를 향해 『산 사람이 있느냐』고 소리쳤다.
그러나 어른들의 대답은 들리지 않고 여기저기서 『여기요』라는 아이들의 소리가 들렸다. 손을 흔드는 어린이의 모습도 보였다. 홍씨가 『몇명이나 되느냐』고 재차 물어보니 『네명이 있어요』라는 대답이 들려왔다.
홍씨는 그러나 2,3분 간격으로 계속 폭발음이 들려 이들에게 접근하지 못한 채 발만 동동 굴렀다. 홍씨는 이들을 구조하지 못한 죄책감 때문인지 『사람들을 많이 구조하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홍씨는 이어 여자의 옷을 찢어 흔들며 미군헬기에 구조를 요청했고 먼저 화상이 심한 여자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옮겼다. 홍씨는 정상까지 걸어가 헬기로 구조됐다. 홍씨는 이날 생사를 함께한 그 여자에게 헤어지기 직전 『우리가 영화를 보고 있는 것은 아니냐』고 물어봤다. 사고 발생 1시간가량이 지나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