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에게 남편의 비자금을 빼앗을 권리가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없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다.
68년 4월 L씨와 결혼해 1남1녀를 둔 K씨는 91년 초 딸을 미스코리아에 당선시키기 위해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후원회사 차장 임모씨에게 5천5백만원을 주었다.
그러나 91년 4월 미스서울 선발대회에서 딸이 탈락하자 K씨는 임씨에게서 돈을 돌려받기로 했다. 문제는 K씨의 부인 L씨가 이 돈을 중간에서 가로채 모두 써버리면서 시작됐다.
91년 5월말부터 L씨와 별거생활에 들어갔던 K씨는 92년 5월말 이혼한 뒤 자신의 허락없이 임씨에게서 받아 써버린 돈을 돌려달라며 L씨를 상대로 서울지법에 소송을 낸 것.
서울지법 민사합의15부(재판장 장용국·張容國 부장판사)는 6일 『K씨가 봉급 등 일정한 수입외에 부업으로 재산을 증식한 점으로 볼 때 임씨에게 준 5천5백만원은 K씨의 「특유(特有)재산」일 가능성이 높다』며 L씨에게 문제의 돈을 돌려주라고 판결했다.
특유재산이란 민법상 부부의 재산관계를 규정하는 법률용어로 혼인생활에서 부부중 어느 한 사람이 자신의 노력으로 취득한 재산을 가리킨다. 특히 금전의 경우 혼인생활중 자신의 노력으로 취득한 뒤 일방적으로 사용하고 처분할 수 있는 배타적인 권한을 가진 경우에만 특유재산에 해당된다는 것.
법원관계자는 『남편이나 아내가 자신의 노력으로 번 돈 가운데 부부의 공동생활에 필요한 생활비와 자녀의 양육비 및 학비 등으로 쓰고 남은 돈으로 상대방 모르게 비자금을 갖고 있었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특유재산으로 인정돼 상대방이 빼앗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호갑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