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잠수함 침투사건 당시 무장간첩 26명 중 유일하게 생포됐던 이광수씨(32·당시계급 상위)가 18일 서울 덕수궁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북한잠수함 침투사건 발생 1년째가 되는 이날 이씨는 『무고한 사람들을 죽인 죄인인데 살려준 것만도 감사하다』며 『앞으로 통일에 기여하는 일에 적극 나서겠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잠수함침투사건 1주년을 맞는 감회는….
『우선 희생된 분들에게 죄송스럽기 그지 없다. 함께 왔던 동료들이 무의미하게 죽은 것도 안타깝다. 지금 생각하면 잠수함 좌초에 어떤 섭리 같은 것이 있지 않았나 느껴진다. 9월16일 강릉 안인진리에 올랐을 때 천둥 번개와 소나기가 쏟아져 임무에 실패하지 않을까 불길한 생각이 들었었다』
―생포직후 전향을 망설였다는 말이 있었는데….
『처음에는 남한정부 사람들이 하는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 그러나 북한의 선전과는 달리 전쟁기념관에서 6.25를 일으킨 것은 북한이라는 증거를 보고 전향을 결심했다. 남한사회의 발전된 모습도 전향결심에 한몫했다』
―당시 침투목적은….
『내가 알기로는 군사정찰 목적이었다. 또 남한 침투를 통해 공작원들의 담을 키우고 체제를 유지하는 목적도 있었던 것으로 생각한다』
―남한의 해안경비가 허술하다고 생각했나.
『잠수함은 발견하기가 극히 어렵다. 특히 잠수함을 이용한 침투는 바다에서 잠망경 등을 통해 경계취약 지점을 고르기 때문에 남한의 해안경계가 허술했다고 말할 입장은 아니다』
―사건후 북한의 대남공작전술이 바뀌었을 것으로 보는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잠시 주춤했겠지만 대남침투를 중단한다면 인민무력부 정찰국의 존재 의미가 없지 않겠는가. 북한이 전쟁을 수행한다면 특수전에 의존할 것이기 때문에 잠수함 훈련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추석을 어떻게 보냈나.
『남한의 한 가정에서 보냈다. 북한에 두고 온 부모와 처, 세살배기 아들이 생각나 가슴 아팠다』
현재 군부대 안보강연 등으로 남한사회에 적응해 가고 있는 이씨는 지난 7월 남한의 주민등록증도 취득했다고 말했다.
〈황유성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