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표언복/우리말 우리 스스로 지키자

  • 입력 1997년 10월 11일 07시 46분


금년 들어 중국 당국은 외신기자들을 상대로 하는 설명문에 영어 대신 자국어를 사용토록 했다. 처음엔 비판의 소리가 없지 않았던 모양이지만 그대로 잘 이행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지난해 방한한 스페인국왕은 김영삼(金泳三)대통령에게 한국내 스페인어 교육의 활성화 지원을 요청하기도 했다. 대개 정상회담에서는 경제협력문제 등을 논의하는데 다소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그런가 하면 프랑스는 자국어를 위해 외국어 남용을 제한하는 법령을 준비중이라는 보도도 있었다. 도대체 언어란 무엇이기에 각 나라가 보호하고 발달시키기 위해 국가적 차원의 노력을 아끼지 않는 것일까. 흔히들 한 민족의 언어에는 그 민족의 혼이 들어 있다고 말한다. 바꾸어 말하면 언어를 상실한 민족은 살아 있는 민족이 아니라는 뜻이다. 말과 글은 한 민족의 정체성을 확인시켜주는 가장 확실한 방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언어가 처해 있는 현실은 어떠한가. 외래어 발생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해도 무절제한 외국어 사용과 과도한 외국어 중심교육, 자유방임 상태나 다름없는 어문정책으로 민족 고유의 언어는 볼썽사납게 일그러져가고 있다. 무엇보다 우리말 어휘의 급속한 감소현상은 대단히 우려해야 할 일이다. 생활방식이 변하는데서 오는 어휘 감소현상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관심부족과 홀대에서 비롯된 면이 적지 않다고 생각된다. 우리말 어휘가 사라진 자리에는 외래어나 외국어가 들어온다. 쓰임새가 정확하지 않거나 맞춤법 표준어 규정에 맞지 않는 어휘는 또 얼마나 많은가. 더욱 마음아픈 일은 언어를 자의적으로 훼손시키고 파괴하는 행위다. 「유니나」 「포그니」 「새미나」 「타미나」 등이 원조격이다. 이제는 아이들을 주소비자로 하는 식품 문구 의류에 이르기까지 우리말을 멋대로 잘라내고 덧붙이는 식의 불구화가 자행되고 있다. 이런 이면에는 서구에 대한 맹목적 선호의식이 뿌리박혀 있다. 상장사 중 우리말 이름의 회사는 2개 뿐이라는 조사도 있었다. 어디 이 뿐이겠는가. 떡볶이집도 「센터」라고 간판을 내걸어야 직성이 풀리는 세상이다. 우리 언어가 더 이상 지금처럼 방치되어서는 안된다. 유네스코는 최근 훈민정음과 조선왕조실록을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남들이 다 인정해주는 우리의 보화를 스스로 지켜나가는 일은 이제 세계사적 과제가 된 셈이다. 민족언어의 상실, 그것은 엄청난 재난이다. 표언복(목원대교수·국어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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