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이씨, 영도 하씨, 한양 김씨, 강남 최씨….
새 본관이 잇따라 생기고 있다. 귀화인이나 버려진 아이들이 새로 호적을 만들 때 새 본관을 만드는 것.
본관에 대한 정부의 최근 통계는 없다. 지난 85년 말 경제기획원의 인구센서스에서 2백49개 성씨에 3천4백35개 본관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으나 『실제로는 없는 본관이 상당수』라는 항의를 받았다.
법원과 구청에선 90년대 들어 최소 3백여개의 본관이 생겼을 것으로 추산한다. 서울가정법원의 박성호판사는 『기존 본관과 겹치지 않으면 귀화인이나 무적자가 원하는 대로 새 본관을 허가해 준다』면서 『서울에서는 한 해 40여 개의 본관이 생긴다』고 말했다.
귀화인의 경우 희한한 본관이 적지 않다.
방송인 이한우씨는 독일 이씨. 독일명 베른하르트 크반트인 이씨는 『86년 귀화하면서 조상이 살던 독일을 본관으로 삼았다』고 말했다. 그는 『조상을 기린다는 의미에서 본관 제도는 좋으나 행정부에서 실생활과 관련이 없는 본관을 관리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미국 출신의 국제변호사 겸 방송인 로버트 할리는 지난 6월 귀화하면서 하일(河一)이라는 성명을 얻었다. 부산에 살고 있는 그의 본관은 영도 하씨. 이름 일(一)자엔 「영도 하씨의 시조」라는 뜻이 포함됐다.
귀화하는 화교들은 대부분 본관을 새로 취득하지 않는다. 올해 한 화교가 거제 반씨로 귀화하려 했으나 거제 반씨 문중의 동의를 얻지 못해 한양 반씨로 본관을 삼은 적은 있다.
한글애호가들은 본관을 한자지명으로 쓰도록 돼 있는 호적법을 무시하기도 한다. 배우리 한글이름보급회장은 『경주에 사는 화가 숨결새별(손동진)씨가 본관을 서라벌(경주)로 쓰는 것을 비롯해 문인과 예술인 가운데는 본관을 아라가라(김해) 한밭(대전) 등으로 내세우는 이들이 상당 수 있다』고 말했다.
새 본관을 취득하는 수는 버려진 아이들이 으뜸. 서울에서는 매달 2백여명의 아이들이 새 본관을 갖는다. 지난 9월까지 대한사회복지회가 있는 강남구에서 3백여명, 홀트아동복지회가 있는 마포구에서 7백여명, 동방아동복지회가 있는 서대문구에서 6백여명이 새 본관을 얻었다. 아이들은 요즘 거의 대부분 한양(漢陽)을 본관으로 갖게 된다. 조씨와 한씨의 경우 한양(漢陽)이라는 기존 본관이 있기 때문에 한양(韓陽)을 본관으로 삼는다. 한 때 강남(江南) 한강(漢江) 등을 본관으로 올리기도 했지만 요즘은 쓰지 않는다. 부산 대구 등의 법원에선 김해 김씨, 전주 이씨 등 본인이 원하는 대로 본관을 허가한다.
서울가정법원의 김재호판사는 『이들은 사실상 「법원 씨」로 나중에 사회적으로 불이익을 받을 우려가 있기 때문에 본관별 인구비율에 따라 본관을 주는 방안을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성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