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의료보장제도 중 의료보호제도라는 것이 있다. 국가에서 영세민과 무의탁자, 중증장애인 등 생활보호대상자들을 위해 진료비를 전액 또는 대부분 부담하는 제도다. 이를 위해 국립의료원 보건소 등 공공 의료기관뿐 아니라 사립 의료기관도 법으로 의료보호 진료기관으로 지정해 놓았다.
그런데 정부가 의료보호 환자들의 진료비를 1개월내에 지불하도록 법으로 정해 놓고도 무려 6개월 이상 지급을 보류해온 진료비가 97년 3월 현재 전국적으로 1천4백23억원이 넘는다.
보건복지부는 9월 「삶의 질 세계화를 위한 사회복지 추진 평가 보고」에서 의료보호제도의 내실화를 위해 내년에는 의료보호 진료비의 만성적 체불을 해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내년에도 진료비 체불상태가 해소될 것 같지는 않다. 올해 의료보호 진료비 국비예산은 3천8백98억원이고 3월까지의 체불액은 1천4백23억원, 금년도 부족 예상분은 8백68억원이다. 내년 예산은 이 금액을 합친 6천2백억원 가량이 되어야 하는데 5천4백83억원으로 결정돼 7백억원 정도 부족할 전망이다. 이 결과 진료비를 받지 못한 병원에서 생활보호대상자들이 적절한 진료를 받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지역의료보험조합의 심각한 재정적자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전국민 의료보험 가입시 국가에서 지역조합에 50%를 지원키로 하고 전국의료보험 지역조합을 설립해 놓고는 90년 이후 지원금을 해마다 줄여 금년에는 33.2%만 지원했다.
그 결과 전국 2백28개 지역조합 중 1백47개 조합이 96년 현재 총 1천7백억원 이상의 당기 적자 상태로 정부는 보험료 인상이란 방법으로 조합원에게 부담을 전가하고 있다. 특히 서민들이 많은 지역의 인상률이 높아 가난한 사람들의 주머니를 더 가볍게 하고 있는 셈이다. 이대로 간다면 향후 수년내에 지역의료보험 대상자들의 진료가 정지될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나라도 선진국이라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했다. 그러나 사회보장 지출비는 국내총생산(GDP)의 0.8%(94년 기준)에 불과해 포르투갈(16.4%·92년 기준) 멕시코(3.8%·〃)보다도 형편없이 낮은 실정이다.
이런 정부의 의지로는 삶의 질을 향상시키겠다는 약속은 공염불이 될 수밖에 없다. 이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지는 못하더라도 매년 일정한 수준의 체불해소 계획을 확고하게 수립, 실천해주기 바란다.
김재정(서울시의사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