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비자금수사」유보 배경]「형평성」고려 장고끝 결단

  • 입력 1997년 10월 21일 19시 57분


비자금수사유보 발표
비자금수사유보 발표
김태정(金泰政)검찰총장이 21일 국민회의 김대중(金大中)총재의 비자금의혹 고발사건 수사를 대선후로 유보한 것은 정치 경제적 파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정으로 볼 수 있다. 김총장의 이번 결정은 우선 김총재의 비자금 의혹사건을 수사할 경우 야당측의 맞고발로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의 92년 대선자금과 신한국당 이회창(李會昌)총재의 경선자금 의혹에 대한 수사도 불가피하다는 점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된다. 김총장이 이날 『형평성과 공정성을 염두에 두고 전면적인 수사에 착수할 것인지 아니면 수사를 유보할 것인지 고심했다』고 말한 대목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최근의 주가폭락과 대기업 연쇄도산 등으로 신용공황마저 우려되는 최악의 경제상황에서 기업인 조사와 계좌추적 등 본격수사에 나설 경우 경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나름대로의 위기의식도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와 함께 수사기술상 대선 전에 수사를 끝내기 어렵다는 점도 수사유보를 결정한 이유 중의 하나라는 것이 검찰 관계자들의 설명. 대검의 수사실무자 사이에서는 사안의 중대성에 비춰 수사에 착수하면 대선 전에 완벽한 결론을 내야하는데 50여명이 넘는 참고인조사와 3백50여개에 달하는 은행계좌추적에 최소한 3∼4개월이 걸린다는 의견이 제시됐었다. 김총장도 김총재와 친인척의 3백50여개 계좌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아 추적에 나서면 김대통령의 대선자금과 신한국당 이총재의 경선자금도 상응하는 수준의 수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대선 전 수사종결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한편 김총장이 「장고(長考)끝에 결단」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은 검찰내부의 다수 의견이 「수사 유보」쪽으로 기울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한 검찰 관계자는 『일선검사들을 상대로 내부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다수가 「현 상황에서 본격수사에 나서는 것은 무리」라는 의견을 나타냈다』고 밝혔다. 김총장의 이번 결정에 대해 이해관계나 관점에 따라 긍정과 부정적인 평가가 엇갈릴 소지가 적지 않다. 특히 검찰이 대선을 앞두고 있다는 이유로 정치적인 사건에 대해 정치적으로 대응했다는 지적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이 법적 논리보다 정치적 경제적 논리를 앞세워 사실상 수사를 하지 않는 선례를 남김으로써 앞으로 김총재의 비자금의혹 고발사건과 유사한 사건이 발생할 경우 이번 선례가 검찰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게 됐다. 〈양기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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