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이철호/방사선 照射식품에 관심갖자

  • 입력 1997년 11월 7일 07시 55분


불과 1세기 전만 해도 인류는 식품을 통해 전염되는 병원균이나 식중독균에 거의 무방비 상태여서 많은 사람들이 고통 속에 죽어갔다. 그러나 그 이후 항생제 발명과 가열살균 및 냉장냉동기술의 발전으로 이제는 폐결핵 콜레라 등 대부분의 수인성 전염병을 예방, 치료할 수 있게 됐다. 그렇다고 미생물이 인간에게 정복당한 채 그대로 있지는 않았다. 새로운 바이러스성 질병인 에이즈, 식중독성 대장균 O―157, 저온성 리스테리아균 등이 등장하고 있다. 현대인들이 필수적으로 사용하는 냉장식품에 창궐하는 병균은 새로운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제 인류는 미생물의 새로운 공격을 받고 있으며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신기술 개발을 요구받고 있다. 신선하고 영양가가 높은 식품을 안전하게 공급하는데는 종전의 가열살균기술 냉장냉동기술로는 부족한 것이다. 여기에 새로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 방사선 조사(照射)기술이다. 강력한 에너지원인 방사선을 잘 조절해 식품에 쬐어 신선도 맛 영양가를 손상하지 않고 유해세균을 죽여 상온에서 오랫동안 안전하게 보존할 수 있는 기술이다. 문제는 원자폭탄의 위력을 경험한 현대인에게 방사선은 살상도구 또는 무서운 유전병을 일으키는 공포의 물질로 생생하게 남아 있다는 점이다. 얼마 전 스위스에서 유엔식량기구 국제원자력기구 세계보건기구 합동으로 「방사선 조사식품의 안전성에 관한 전문가 연구회의」가 열렸다. 제한적으로 사용하던 식품의 방사선 이용범위를 대폭 확장하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연구된 수백편의 논문을 평가 검토하는 자리였다. 결론은 방사선 조사기술은 새로이 발호하는 식품 유해 미생물을 효과적으로 사멸하면서도 식품의 신선도나 영양가를 높이 유지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이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우주인들은 주로 방사선 조사에 의해 장기간 저장된 식품을 우주선에서 먹었다. 미국이나 유럽 병원에서는 면역결핍증 환자들에게 방사선 조사로 멸균된 식품을 공급하고 있다. 일부 국가에서는 산악인이나 특수 스포츠인들의 음식으로 멸균포장된 조사식품을 판매중이다. 이 기술이 정착되면 현재 화학적 첨가물로 사용되는 식품보존제나 훈연제의 사용량을 크게 낮출 수 있고 지나친 가열 살균에 의한 맛 저하나 영양가 손실을 방지할 수 있게 된다. 한가지 남은 과제는 원시인들이 불의 공포에서 벗어나듯 현대인들이 원자력의 공포에서 얼마나 빨리 벗어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철호<고려대생명공학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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