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호(李昌鎬)국수와 서봉수(徐奉洙)9단은 대국이 끝난 뒤 30여분간 복기를 하면서 서9단의 「착각」이 승부를 갈랐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서9단은 중앙 백대마 공격을 위해 상당한 실리를 포기했으나 의외로 쉽게 백이 살아버리자 『가끔 정신이 깜빡거릴 때가 있다』며 허탈해 하는 표정.
○…이번 대국은 서9단이 흑번이기 때문에 검토실 기사들은 서9단쪽에 은근히 무게를 두기도. 그러나 이국수가 느린듯 하면서도 무게있는 행마로 중반 이후 역전을 이끌어내자 『역시 이창호』라는 평가가 절로 나왔다. 검토실 기사들은 이국수가 한수씩 둘 때마다 『태연자약하다』 『평범한 수만을 두는 데 어떻게 이기는지 알 수 없다』며 탄성을 연발.
○…승부의 최대 고비는 이국수가 백42로 흑진에 뛰어든 대목. 이 때부터 두 기사는 상대방의 「주문」을 벗어나는 응수로 일관해 각자 제 갈 길을 걷기 시작. 그러나 서9단이 공격과 방어를 동시에 타개하는 묘수를 찾지 못해 결국 「뚝심 대결」에서 패배.
○…점심식사 때 두 기사는 평소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 대신 상대가 좋아하는 음식을 주문하는 등 식사 때마저 신경전. 이국수는 좋아하는 장어덮밥이나 튀김정식 대신 대구탕을 주문했고 서9단은 이국수가 좋아하는 장어덮밥으로 「역공」.
○…이국수는 대국이 끝난 뒤 귀가하지 않고 또래의 젊은 기사들과 어울려 바둑연구를 벌여 『역시 이창호는 다르다』는 평가를 받았다. 입회인인 홍종현(洪鍾賢)8단은 『세계 정상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며 이국수의 연구자세를 높게 평가.
〈최수묵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