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시민교육에 관한 법률안이 국회운영위원회에 제출돼 계류중이다. 이 법률안은 수년간 본회의에 회부되지 못하다가 마침내 내년 1월 임시국회 본회의에서 의결에 부쳐질 전망이다. 이 안은 우리의 뒤떨어진 시민의식을 고양해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고 국제화 및 지방화 시대에 적극 대응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모델은 독일의 시민정치교육이다.
시민교육법안 취지는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누가 이 법안을 시행하느냐는 점에는 논란의 소지가 있다. 물론 이 안에는 정치적 중립을 위해 국회 산하기관으로 민주시민교육원을 설립하자는 내용이 들어 있다.
그런데 이는 최악의 상황에 있는 국가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지금 우리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고 있다. 이러한 때에 장관급 부서를 신설하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게다가 이미 민주시민교육을 부분적으로나마 실시하는 기구들이 있지 않은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선거연수원과 통일원 산하 통일교육원이 대표적 예다.
두 기구 중 선거연수원은 시민교육에 활용됐을 때 비용과 교육적 성과라는 두 가지 효과를 한꺼번에 충족시킬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선거연수원은 중앙선관위 직속기구로 선거와 정치문화 개선을 위해 선관위원 외에도 시민단체 학생 일반인 등을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따라서 정치적 중립 측면에서나 조직 면에서 다른 기관보다 우위에 있고 별도의 재정부담 없이도 독일의 정치교육원과 같은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독일의 정치교육원은 선거관리 업무를 맡고 있는 내무부에 소속돼 있다.
반면 통일교육원은 정치적 중립과 조직, 재정상의 문제 때문에 민주시민교육에 있어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특히 업무상 안전기획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 중립성 시비가 따를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민주시민교육의 불가피성과 당면한 국가재정상의 어려움을 동시에 고려한다면 선거연수원을 활용하는 방안이 가장 현실적이다. 선거가 없을 때 선관위를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바람직하다.
앞으로 민주시민교육을 선거연수원에서 맡게 된다면 시민교육이 선거연수원의 궁극적 과업이 되리라 본다. 때문에 선거연수원의 이름을 보다 포괄적인 것으로 바꾸는 한편 교육대상을 확대하고 내용도 지금보다 깊이있게 다뤄야 한다. 또 내부 재교육도 강화해야 한다고 본다.
박병석 (성대 사회과학硏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