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김상곤/어려운 시절… 작은것부터 소중히

  • 입력 1997년 12월 19일 06시 59분


기업이 부도났다는 말은 수 없이 들어왔으나 나라가 부도났다는 말은 별반 들은 적이 없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이란 용어도 생소한 말이다. 어쨌든 나라 경제가 어렵게 되어 남의 돈을 몽땅 들여와야 한단다. 우리는 한동안 잘 먹고 잘 써 왔다. 이렇게 흥청망청 살면서도 크게 걱정하는 소리는 없었다. 지금에 와서 정부나 언론이 떠드는 것을 보면 확실히 나라가 곤경에 처한 것은 분명하다. 이번 위기로 그동안 구호에만 그쳤던 「작은 정부 만들기」가 현실로 다가왔고 기업의 임직원 감축이나 임금동결, 금융계 통폐합도 눈앞에 와 있다. 경제를 살리자는 운동이 국내외 각계 각층에서 일고 있다. 요즘같이 나보다 국가를 더 생각하는 국민적 애국심의 발로는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그 방법도 다양하고 구체적이다. 달러 모으기, 십원짜리 동전 모으기에 유학생까지 불러 들이자는 말까지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이 와중에 몇 모금 안되는 수백만원짜리 양주나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모피가 팔려 나간다는 소식은 참으로 우리를 슬프게 한다. IMF에서 수백억 달러를 가져오고 여러나라에서 구걸하여 들여오는 돈이 공짜가 아니지 않은가. 빚을 내서 빚을 갚아야 하고 바닥난 달러박스를 채워야 하는 어려운 형편이다. 정부나 기업, 그렇게도 콧대 높았던 금융계가 개인보다 나라를 걱정하는 애국정신을 앞세워 우리 것을 작은 것부터 소중히 여겨야 한다. 국민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한다면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것이다. 나는 이십년 가까이 신문속에 끼여오는 광고전단을 설교 원고나 메모지로 활용하고 있다. 신문을 읽기 전 신문속 전단을 가지런히 거두는 일은 오래전부터 들여온 습관이다. 대개의 광고지는 종이 질이 고급이다. 차곡차곡 모아둔 이면지를 한장 한장 꺼내 쓰는 재미가 꽤 크다. 돈주고 산 것도 아니니 부담도 없다. 종이 한장 만드는데도 돈이 든다.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는 풍토를 다져 가야겠다. 성경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예수께서 광야에서 떡 덩이 다섯개와 생선 두 마리로 오천명을 배불리 먹인후 제자들에게 남은 부스러기를 거두게 하니 열두 바구니가 되었단다. 작은 것부터 그리고 구체적인 정책 아이디어로 이 어려움을 슬기롭게 대처해 가자. 조금만 형편이 나아지면 IMF의 한파를 쉽게 잊어버릴 국민적 망각증이 벌써 걱정스럽다. 김상곤 (목사·반UR한국기독교 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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