콧잔등을 시리게 하는 매서운 바람. 그러고 보니 대한민국 남아로 태어나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지원한 의경생활도 벌써 두번째 겨울을 맞았다.
작년 이맘때는 왜 그리도 추웠는지. 그때의 옷차림이나 내무반 난방시설은 중고참이 된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는데 가슴속은 시베리아 수용소의 난민처럼 춥기만 했다. 소위 ‘잔반’은 먹어도 먹어도 왜 그리 빨리 꺼지는지 하루에 다섯끼는 먹어야 견딜 것 같았다.
크지도 않은 내무반에 득실거리는 40명의 남자들. 지금이야 함께 장난치면서 뒹구는 고참들이지만 그때만 해도 마치 만화 속의 악마처럼 커다란 입으로 나를 잡아먹을 것처럼 느껴졌다.
모든 게 낯설고 하는 일마다 실수연발이었다. 툭하면 꾸지람이 쏟아졌고 신병이란 말만 떨어져도 허둥대기 일쑤였다. 결국 ‘고문관’이라는호칭까지붙었다. 정말피도 눈물도 없고 악으로만 뭉친 냉혈인들이 아닌가. 이런 곳에서 두 해 동안이나 먹고 자고 해야 한다니 착잡하고 막막하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그날도 예외없이 실수를 해 혼이 났고 벌로 청소를 하고 있는데 고참이 또 부르는 게 아닌가. 잔뜩 긴장해서는 벼락같이 달려가 차려자세로 섰다.
그런데 웬걸. 슬며시 다가오더니 “처음엔 그런거야. 나도 그랬으니까. 이거 너만 몰래 먹어라” 하는 따뜻한 한마디를 건네며 주머니에 초코파이 하나를 쑥 집어넣고 가는 것이었다. 따사로움을 느끼게 했던 그 선한 눈망울. 그 따뜻한 손길과 눈길은 동상걸린 발이 벽난로 불에 녹듯이 얼었던 내 마음을 녹여주는 동화 속의 마술이었다. 역시 그랬다. 군대에도 겨울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마음을 열고 긍정적으로 다가서면 마귀같은 고참들도 달콤한 초코파이처럼 다가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은근한 사랑이 있고 끈끈한 정이 있는 곳이 군대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침 점호와 함께 오늘도 새로운 하루가 시작된다. 오늘은 엊그제 들어온 어리숙한 신병들에게 몰래 초코파이를 전해야겠다. 사랑의 마음을 가득 담아서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도록 말이다.
안호하(서울 중구 남대문로5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