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시대 새 모습]밤 1시면 인적 『뚝』

  • 입력 1998년 1월 17일 20시 29분


유흥업소는 ‘초저녁 할인’을 내걸었다. 명퇴당한 뒤 운전대를 잡은 초보 택시기사는 요금이 많이 나왔다는 승객의 항의에 요금을 내려받았다. 퇴근한 중년 회사원은 야간 학원수강을 마친 뒤 서둘러 귀가했다…. 국제통화기금(IMF)시대가 바꿔놓은 서울시내의 밤 풍경. 시민들은 찬바람만 부는 새로운 환경에 ‘응전하고 도전하기 위해’ 다양하게 변화하는 삶의 현장을 연출했다. 16일 밤 9시반경 서울 신촌 일대. 평소보다 극성스러워진 ‘삐끼’들로 걷기가 불편하다. 술집 주인도 손님을 ‘모시기 위해’ 직접 나섰다. “사흘 동안 손님 한 명 못받았으니 도와달라”며 끈질기게 붙잡는다. 모 호텔종업원들은 할인티켓을 뿌렸다. 이들은 “개그맨을 동원해 이벤트행사를 벌여도 손님들이 잘 웃지 않는다”고 푸념이다. 대부분의 유흥업소가 밤 9시 이전에 입장하는 손님에게는 고급안주를 서비스하고 있으나 효과는 시원치 않다. 일부 손님은 단체로 와서 깎아 달라며 흥정을 벌이다가 결국 인근 소주방으로 향했다. 밤 10시경 서울 종로와 노량진 학원가에서 쏟아져 나오는 학생들 사이에 지친 모습의 중년들이 눈에 띈다. 김모씨(50)는 “낮에 직장을 마치고 이곳에 와 주택관리사 자격증을 따기위해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밤 10시반경부터 서울시내가 일시적으로 활력을 되찾는다. 막차시간이 다가오면서 지하철과 버스를 타려는 사람들로 정류장마다 북새통이다. 지하철 강남역앞 분당행 버스정류장에는 30m 가량 긴 줄이 늘어섰다. 빈 택시가 줄지어 기다리고 있지만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 택시손님이 격감한 뒤 이제는 승객들이 택시를 퇴짜놓는다. 명퇴 후 택시를 몰기 시작했으나 길을 모른다는 조모씨(40)는 요금이 더 나왔다는 승객의 항의에 “평소대로 달라”며 사과했다. 17일 오전 1시경이 되자 동대문시장과 남대문시장 일대를 제외하고 서울시내 전체가 침묵에 잠겼다. 이곳 상인들은 “예전보다 손님이 30%나 줄었다”며 울상이다. 대조적으로 주택가 비디오점과 서점은 활황이다. 주부 김모씨(29)는 “남편과 함께 집에서 술한잔 하고 비디오 보는 시간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교보문고 등 서점가에서는 “요리책과 성관련 서적이 평소보다 20%이상 많이 팔린다”고 말했다. 〈이원홍·하태원·권재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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