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최대 명절인 설을 앞두고 직장인들이 감원 공포에 떨고 있다. 많은 기업이 설 연휴를 전후해 해고의 칼날을 휘두를 것이란 소문이 파다하기 때문.
L기업 김모대리(32)는 며칠전 고향 부모님께 전화해 “이번 설에는 일이 많아 못내려 갈지도 모른다”고 전했다. 회사에서 설 연휴 이전에 10% 감원을 하겠다고 발표한 터라 살아 남는다는 보장이 없어서다.
L물산 입사 2년차인 김모씨(28)는 최근 실시한 사내 건강진단에서 간이 나쁜 것으로 나와 조마조마하다. 설을 전후해 15% 감원 한다는 말을 듣고서도 신입사원인데 설마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건강이 해고의 빌미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밤잠을 설친다.지난 연말을 감원없이 용케 넘긴 C광고회사 직원들도 이번 설은 무사히 넘길 수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해고를 하더라도 우리 정서상 명절 전에는 안할 것’이라는 소문이 그럴 듯하게 나돌다가 ‘모(母)그룹이 이미 감원을 시작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분위기가 급랭했다.
루머가 많기로 유명한 증권가는 경제동향에 대한 정보보다 자신들의 거취문제에 대한 정보교환이 더 활발하다. 5,6개사가 이미 소리없이 감원중인 상태에서 설을 고비로 가시적인 발표가 있을 것이라는 물밑정보가 바쁘게 오가고 있다.
며칠전 H증권이 차장급 이상 간부를 상대로 명예퇴직신청을 받기 시작하자 곧 다른 증권사들도 본격적인 감량에 나설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설 직후 대량감원이 이미 예정된 기업도 상당수다. M광고회사는 설 직후 직원 절반을 퇴직시키겠다는 방침을 이미 통보했다.
J주류회사의 경우도 회사측에서 강도높은 구조조정을 통해 부서간 통폐합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이후 직원들 사이에 “설 휴가가 곧 영원한 휴가”라는 자조섞인 농담이 나돌고 있다.
대기업 H사 직원들은 설에 고향갔다오면 책상이 치워질지도 모른다며 불안해하고 있다. 회장이 신년사에서 “우리는 감원없다. 함께 가자”고 한 지 며칠도 안돼 임원 20% 가량을 ‘단칼’에 날리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윤종구·김경달·권재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