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전 8시 김포공항 2청사 면세구역.
국제선 항공기가 도착하자 환승승객이 쏟아져 나온다. 졸음에서 완전히 깨어나지 못한 듯한 얼굴을 한 채 승객들이 칫솔과 수건을 들고 화장실 입구에 길게 줄을 섰다.
이같은 진풍경은 환율폭등의 여파로 생긴 현상.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등 국적기 좌석이 남아돌면서 김포공항을 경유해 목적지로 가는 환승승객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 환승승객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세배, 지난해 10월에 비해 다섯배 가량 늘어난 하루평균 3천5백여명. 환승승객은 중국 홍콩 일본을 오가며 사업을 하는 외국인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올해 초 내국인 출국자가 지난해에 비해 45% 가량 줄어 울상을 짓고 있는 국내 항공사에는 부쩍 증가한 환승승객이 운송수지를 맞추는 ‘효자’노릇을 하고 있다.
이처럼 환승승객이 늘어난 것은 환승시 요금이 30∼40% 싸기 때문.
21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도착한 재일교포 김모씨(45)는 “김포공항을 경유해 일본에 가는 것이 직항로를 이용하는 것보다 항공요금이 40만원 정도 적게 든다”고 말했다.
김포공항 면세점은 썰렁해진 출국장 때문에 매출이 감소할 것으로 생각했으나 환승승객 덕택에 이달 들어 하루 매출액이 지난해보다 30% 가량 늘었다.
공항 면세점은 이 바람에 지난해 한 병에 7백만원 이상을 호가해 화제가 됐던 프랑스산 ‘로마네콩티’포도주 4병을 모두 팔아 추가 도입을 계획하고 있다.
공항 관계자들은 “국제통화기금(IMF)한파가 계속되면서 국적기에 내국인 출국자보다 환승승객이 더 많이 탑승하고 있다”면서 “항공료를 싼 값에 제공하는 대신 공항면세점이 외화를 벌어들여 좋다”고 말했다.
〈정위용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