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선거 때마다 신문에 단골메뉴로 등장하는 사진이 있다. 유세장에서 입후보자가 유권자들에게 큰절을 올리는 장면. 양복과 손에 흙이 묻거나 말거나 맨땅에서 절을 하는 열성까지 보인다.
그 앞에는 흐뭇하게 내려다보며 상전의 기분을 잠시나마 만끽하는 유권자의 순진한 모습이 있다. 의원에 당선할 경우 국민을 주인으로 모시고 종의 역할을 충실히 하겠다는 약속인 것이다.
▼그러나 국민은 후보의 큰절이 한낱 쇼에 불과하다는 걸 경험으로 안다. 일단 의원에 당선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태도가 돌변하는 게 그들이다. 유권자들은 매번 속는 줄 알면서 절을 받는다.
그들의 큰절이 진심이라면 항상 국민을 두려워 할 것이다. 늘 여론에 귀를 기울이려고 노력할 것이다. 의원회관의 기온이 여전히 한여름이라는 보도는 국민과의 약속을 쉽게 뒤집는 의원들의 속성을 잘 드러낸다.
▼환경운동연합이 서울시내 대표적 건물의 실내온도를 2차조사한 결과 1차조사 때 관공서 중 가장 높은 온도(23.5도)를 보였던 의원회관은 오히려 25.2도로 높아졌다고 한다. 정부가 권장하는 적정온도 18∼20도를 한참 뛰어넘는 수준이다.
1차조사 결과가 발표됐을 때 본보 사설(1월16일자)은 의원회관의 솔선수범하지 않은 행태를 강도 높게 비판했었다. 결과는 ‘쇠 귀에 경 읽기’가 된 셈이다.
▼집권당이 된 국민회의 당사도 20.2도에서 이번에 22.8도로 높아졌다니 보통 강심장이 아니다. 서울보다 훨씬 추운 전방의 장병들도 기름을 아끼려고 지프 대신 자전거를 이용하고 공공 및 대학도서관 이용자들은 겨우 15도 안팎에서 오들오들 떨며 책을 읽는 마당이다. 높으신 양반들, IMF한파 속에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가.
〈육정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