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육정수/차분히 「내일」을 대비하자

  • 입력 1998년 1월 26일 18시 30분


▼올해 설은 유난히 춥다. 곳곳에서 우울한 소식만 들리고 날씨마저 삼한사온(三寒四溫)을 잊었는지 연일 강추위다. 직장에서 밀려난 수많은 실직자들이 거리를 헤매지만 사회는 안아줄 온기(溫氣)조차 잃은 것 같다. 예년 같으면 일가족이 한데 모여 윷놀이 화투놀이에 얘기꽃 웃음꽃을 피우느라 한창일 때다. 서울역엔 귀성을 포기한 시민들이 미리 사둔 기차표를 무르는 대열이 길기만 하다. ▼우리를 더욱 춥게 하는 것은 ‘IMF범죄’의 기승이다. 생후 6개월된 아이의 분유값을 마련하기 위해 고물상에서 고철을 훔친 부정(父情). 먹을 것이 없어 분식집에서 음식을 훔쳐 먹다 붙잡힌 실직노무자. 생활비가 떨어져 화장품가게에서 돈을 훔친 주부. 마음을 아프게 하는 ‘생계형 범죄’가 눈에 많이 띈다. 30년 이전으로 시간을 되돌린 듯한 요즘 현실이 IMF한파를 한층 실감나게 한다. ▼한탕을 노려 복권과 경마에 탐닉하는 실직자도 급증하고 있다는 보도다. 가족의 생계를 짊어진 그들의 애타는 심정이야 오죽하랴. 하지만 범죄나 한탕주의는 그 자체가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성공은커녕 패가망신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큰돈을 만져보겠다는 성급함보다 차분히 재취업을 시도하거나 다음을 위해 알찬 축적을 하는 인내와 지혜가 아쉬운 때다.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실직해도 크게 당황하지 않고 낚시나 여행으로 잠시 마음을 달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우리에겐 ‘그림의 떡’인 실업급여제도가 잘 돼 있기 때문이다. 이웃과 사회, 정부가 따뜻한 관심을 갖고 실직자의 기본생활문제를 해결해 주는 게 모두를 위한 길이다. 외환위기에 빠진 인도네시아의 최근 상점가 집단약탈사건은 타산지석(他山之石)이 될만하다. 육정수<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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