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교육/영광 「영산성지고교」]학생-교사는 동격

  • 입력 1998년 2월 16일 06시 58분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얼굴에 화장을 해도 아무도 말리지 않는 학교. 수업일정을 포함한 학교생활을 모두 학생 스스로 결정하는 학교. 교사와 학생이 동등한 인격체로 대접받는 학교. 학생들이라면 누구나 꿈꿔 볼만한 이런 학교가 우리나라에 있을까. 전남 영광군 백수읍 길용리 ‘영산성지고등학교’가 바로 그런 학교. 여학생 12명을 포함, 전교생 54명과 10명의 교사가 공동체 생활을 하며 ‘인성(人性)중심의 열린교육’을 실천하는 곳. 이 학교 학생들은 일반 학교 생활에서 적응에 실패하는 바람에 자퇴와 퇴학을 밥먹듯이 한 경력자들이 대부분이다. 제 나이에 학교를 다니는 학생은 12명뿐이다. 일년 내내 아무 때나 편입이 가능한 것도 이 학교의 특징이다. 74년 고등공민학교로 출발, 82년 고등학교 학력인정 학교로 인가받았다. 84년에는 농촌지역의 학생이 줄어드는 바람에 한때 폐교를 고민하기도 했다. 그러다 부적응 청소년을 위한 인성중심 교육으로 방향을 잡아 영국의 서머힐스쿨처럼 자율학교로 자리잡았다. 제법 ‘사회경험’이 풍부한 아이들이 모인 이 학교의 주인은 바로 학생 개개인. “우리 학교에서는 교사와 학생이 동등합니다. 부탁과 설득은 있어도 명령은 없지요.” 송기웅교사(37·사회)는 “학생들의 자율과 자치를 최대한 존중하는 것은 기본”이라고 말했다. “가끔 대들기도 하지만 선생님들은 언제나 저희를 믿고 기다려 주세요. 학생들의 다양성을 인정해 주시는 거죠.” 학생회장 최종민군(20)의 말이다. 성지고 학생들은 대학생 수준의 자율을 만끽한다. 헤어스타일과 복장은 물론 흡연까지도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본인이 알아서 한다. 그 따위는 인간의 본성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믿기 때문. 그렇지만 교사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학생은 없다. 스스로 정한 규율은 엄격히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워낙 거칠 것 없이 자라온 아이들인지라 공동체 생활이 쉽지만은 않다. 학기중에는 그런대로 적응하다가도 방학이 끝나면 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 무엇보다도 가정의 화목한 분위기가 그리운 아이들. 그래서인지 학생들은 서로를 형제처럼 아끼고 보살핀다. “선생님, 아이들이 이번 시간에는 팝송을 배우고 싶대요.” “그래, 어떤 곡이 좋을까.” 수업장면도 여느 고등학교와는 사뭇 다르다. 영어시간에는 팝송이나 영화속의 한장면이 수업에 활용된다. 학력 차이가 큰 수학시간에는 학년에 관계없이 능력별 분반수업을 실시한다. 날씨가 좋으면 야외수업도 하고 여름이면 개울에서 멱감는 것으로 체육수업을 대신한다. 수업은 하루 6교시. 물론 시험은 꼬박꼬박 치른다. 공부가 더 하고싶은 학생에겐 교사들이 언제든지 개인지도를 해준다. “우리 학교에서 하는 일이 기껏 바닷가에서 모래 한 줌을 건져올리는 일에 지나지 않을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그 학생이나 부모에게는 세상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을 되찾아주는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결코 이 아이들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3학년 13명이 10일 졸업을 했다. 이번이 13회째. 5년만에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경우가 대부분. 그만큼 학창생활에 대한 아쉬움도 많았다. 절반 가량은 대학에 진학해 학업을 계속할 예정이지만 나머지는 군에 가거나 취업을 앞두고 있다. 졸업식 전날인 9일 저녁 졸업생들은 교사들을 영광읍에 있는 중국음식점에 초청, 탕수육과 자장면으로 조촐한 사은회를 베풀었다. 부모나 친척 손에 이끌려 처음 학교를 찾던 날부터 무던히도 교사들의 속을 썩이던 제자들…. 졸업소감을 묻자 한 학생은 “선생님 잔소리 안들어도 되니 속이 후련하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졸업식 날은 원래 선생님들이 복수당하는 날’이라며 은근히 겁을 주는 학생도 있었다. 그러나 졸업후 꼭 찾아오라는 교사들의 간곡한 당부를 듣고는 모두 눈물을 글썽거렸다. “막상 졸업을 하려니 아쉬움만 가득합니다. (중략) 더이상 응석받이로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겁나고 망설여지지만 선생님들이 가르쳐주신 대로 살아가렵니다. 스스로 일어서는 모습을 지켜봐 주세요.” 영산성지고교 연락처 0686―52―6351 〈영광〓홍성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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