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홍찬식/젊은이들 갈곳이 없다

  • 입력 1998년 2월 16일 19시 31분


‘문명충돌론’을 제기한 새뮤얼 헌팅턴 미국 하버드대 석좌교수가 세계적으로 이슬람국가에서 분쟁이 많이 일어나는데 대해 설명한 내용이 흥미롭다. 그는 이슬람국가에서 15세부터 30세까지의 실업률이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높게 나타나는 점에 주목한다. 한창 혈기 넘치고 욕구 왕성한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갖지 못하면 어느 사회든 불안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외국의 사례와 단순비교하는 것이 무리일지 몰라도 우리의 상황은 그와 많이 닮아 있다. 벌써 몇년째 불황이 계속되면서 엎친데 덮친 격으로 국제통화기금(IMF)사태까지 터지자 젊은 세대의 사회진출 기회는 상당부분 원천봉쇄되어 버렸다. 특히 대학졸업자 등 고학력자일수록 취업난이 심각하다. 현재의 여건으로 보아 젊은이들의 방황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는 점이 더욱 가슴아프다. 막 학교문을 나서면서 한껏 기대에 부풀어 있어야 할 젊은이들이 차가운 현실 속에서 느끼는 좌절감은 대단할 것이다. 사회가 원망스럽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막막한 기분일지 모른다. 이들의 불행은 나라 전체의 불행이기도 하다. 젊은 세대는 강한 모험정신과 샘솟는 상상력으로 사회 곳곳에 새 활력을 불어넣는 역할을 해왔다. 사회가 이들을 수용하지 못하는 현실은 국가적으로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시간을 갖고 형편이 나아지기를 기다려 본다고는 하나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요즘 휘몰아치고 있는 구조조정의 거센 파도는 우리 사회 고용구조의 틀을 뿌리째 흔들어 놓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을 나와 안정된 직장을 구하면 평생이 보장된다는 직업관이 모래성처럼 허물어지고 있음은 최근 화이트칼라의 급속한 몰락에서 쉽게 감지된다. 어느 분야든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근로자는 살아남기 힘든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젊은 세대도 이 점에서 준비되지 않은 상태임은 이전 세대와 다를 게 없다. 얼마 전까지도 우리 사회는 이들에게 전문성을 요구하지 않았고 대학도 이들의 전문성을 길러주지 못했다. 그래서 이들의 앞날은 더욱 불확실하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사람뿐이다. 수천억달러에 이르는 엄청난 외채를 갚으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예측하기조차 어렵다. 내세울 만한 자원이 없는 우리로서는 한시라도 빨리 새로운 환경이 요구하는 인재를 양성해야만 국가위기 타개에 희망을 가질 수 있다. 문제는 교육시스템이다. 입시경쟁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치열하지만 일단 대학에 들어간 이후에는 대충 시간을 보내도 졸업이 가능하다. 대학생들을 집에 들를 시간조차 없이 밤낮으로 공부를 시키는 선진국과 비교할 때 경쟁력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초중고교에서도 공부시간은 다른 나라 학생보다 많을지 몰라도 정작 학생들이 미래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소양과 능력을 키워주는 교육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대신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올리기 위한 기형적인 교육만 존재할 뿐이다. 형식적인 교육개혁이 아닌 보다 실질적이고 획기적인 교육제도의 개선과 그에 걸맞은 과감한 교육투자가 시급하다. 앞으로 개개인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무기인 전문성의 확보는 사회 각분야가 골고루 발전해야 가능하므로 이 점에 특히 배려가 이뤄져야 한다. 젊은 세대는 새 시대에 적응할 수 있도록 차분하게 재교육 등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현명한 자세다. 주변에서도 이를 적극 지원해야 한다. 그것은 젊은 실업자 양산에 따른 또다른 사회적 부작용을 막는 방법이기도 하다. 홍찬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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