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송인준/「울분성 폭력」자제해야

  • 입력 1998년 2월 17일 07시 53분


야수들이 몰려 울부짖는 광야.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 아닌가 싶다. 욕설과 삿대질은 늘 보는 일이다. 차를 세워놓고 주먹다짐을 벌이기도 일쑤요, 주부들의 볼썽사나운 소란도 심심찮게 경험한다. 쓰레기 소각장 얘기만 나와도 시작되는 주민들의 난동은 이미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가정내의 부부싸움이나 자녀구타도 그냥 ‘집안 일’로 넘길 수 없는 수위에 이르렀다. 폭력범죄는 그동안 검찰이 가중처벌법 등으로 처벌했으나 지난 한해 동안 교통범죄 다음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등 그 효과가 별로 신통하지 않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이는 지난 한세기 동안 폭력이 정당화되거나 묵인되는 상황에서 알게 모르게 우리들이 폭력성에 길들여진 게 아닌가 싶다. 그런 탓에 이제는 폭력에 대한 죄의식마저도 별로 없다. 심지어 웬만한 사건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폭력 인플레’ 심리마저 심화되고 있다. 병은 더 깊어지기 전에 치유해야 한다. 폭력습성을 떨어내는 일이 무엇보다 긴요하다. 조급한 성격은 고치고 대화해결 능력을 길러야 한다. 폭력이 미화되거나 화염병을 들고 설치는 ‘거리의 무법자’가 민주투사로 영웅시되는 세태도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법도 무르게만 운용되어서는 안된다. 상습적이고 조직적으로 폭력을 일삼는 자는 이 사회에 발을 붙이지 못할 정도로 엄하게 다스릴 필요가 있다. ‘폭력은 안된다’는 자각이 사회 한가운데서 깨어 일어나고 폭넓은 공감대 위에서 시민의 생활운동으로 자리잡혀야 한다. 물론 억울함과 분함으로 응어리진 ‘불만 에너지’를 용해시키는 서로간의 사랑과 사회적 배려가 보다 근본적인 치유책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선진국처럼 ‘익스큐즈 미(Excuse Me)’를 일상화하고 어깨가 부딪힌 사람끼리 서로 사과의 말 한마디를 아끼지 않는 분위기가 선행되어야 한다. 요즘 IMF한파로 생활이 움츠러들자 울분성 폭력이 빈발하고 집단소요 등도 예상된다. 그러나 사람들이 ‘거리의 이리’가 되어 배회하는 폭력사회로는 오늘의 난국을 이겨낼 수 없다. 절제하고 사랑으로 함께 살아가려는 정신적 풍요안에서만 물질적 궁핍이 극복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송인준(대검찰청 강력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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