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부형권/『김현철 피고, 들으세요』

  • 입력 1998년 2월 17일 20시 14분


“김현철(金賢哲)피고인 앞으로 나와요. 피고인석 뒤에 서서 들으세요.” 17일 오전 서울고법 403호 법정. 재판부의 호명을 받고 법정 앞으로 나간 김피고인이 피고인석에 앉으려고 다소 어정쩡한 자세를 취하자 서울고법 형사10부 권광중(權光重)부장판사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1심 선고공판 때 앉아서 재판받았던 김피고인은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순간 어깨를 움찔하더니 뒷걸음으로 자리를 잡고 섰다. 두 손은 앞으로 모아 깍지낀 채. “얼마전 전직대통령들이 법정에 섰고 오늘 다시 현직대통령의 아들이 법의 심판을 받게 됐습니다. 존경과 부러움을 받아야 할 권위가 땅에 떨어진 현실이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권부장판사는 정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선 김피고인을 내려다보며 탄식과 훈계가 담긴 판결문을 읽어내려 갔다. “피고인은 대통령의 아들로서 그에 상응하는 높은 도덕상의 의무가 있는데도 출처가 불분명한 1백20억원의 거액을 보유관리하면서 금융실명제를 위반하고 사회정의 실현에 역행했습니다.” 권부장판사는 낭비벽이 심한 며느리에게 권총을 선물한 중국 최고권력자의 일화가 소개된 신문기사도 인용했다. 권력핵심의 친인척에 대한 ‘도덕성’을 강조했다. 재판장의 ‘도덕교육’이 계속되는 동안 김피고인은 서있는 게 불편한지 가끔 발의 위치를 바꿀 뿐 착잡한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했다. 내내 침묵으로 일관했던 김피고인. 1심과 같이 징역 3년이 선고되자 김피고인의 얼굴엔 실망의 빛이 스치는 듯했다. 법정을 떠나며 “재판부의 의견을 존중한다”고는 말했지만 그는 끝내 스스로를 ‘정치적 희생양’으로 느끼는 인상이었다. 승복하지 않는 듯한 그의 모습에서 ‘권력과 재판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부형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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